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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원희룡 지사의 '빗나간' 작심발언

  • 2020.01.09(목) 10:33

신년 기자간담회서 오리온에 '물 공급 중단' 가능성 언급
제주도, 부랴부랴 "오리온과 오해 없이 협의 진행" 정정

"오리온이 제이크레이션을 인수해서. 아 그렇구나. 정정하겠습니다. 오리온이 제이크레이션을 인수한 것이 아니고 제이크레이션은 현재도 따로 있는 거죠?"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오리온이 지난달 출시한 '제주용암수'의 국내 판매를 계속 강행한다면 물 공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는데요. 이렇게 되면 오리온은 제품 출시 한 달 만에 사업을 철회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주도는 원 지사의 발언 이후 곧장 '보충 자료'를 내놨습니다. 이 자료에는 제주도가 오리온 측과 불필요한 오해 없이 계약 체결을 위한 실질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오리온 경영진에게 '명확한 결정'을 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원 지사의 발언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로 보입니다.

원 지사의 발언에는 사실관계가 다른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오리온이 제이크레이션을 인수했다는 언급입니다. 오리온은 제이크레이션이 아니라 '제주용암수'라는 업체를 인수했습니다. 제이크레이션은 현재 별도로 용암수를 판매하고 있는 업체입니다. 원 지사가 이 발언을 세 번에 걸쳐 했다가 정정한 점을 고려하면 단순 실수가 아니라 정말 몰랐던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이 밖에도 원 지사의 발언들에는 '보충'이 필요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오리온이 물을 공급받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첨부해 '사용 신청'을 하고 있다는 식의 언급이 있었는데, 사실 신청서에는 사업계획서가 첨부돼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점들은 사소한 실수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원 지사가 이번 사안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고민해온 게 맞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사실입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3일 제주도청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청 제공)

오리온과 제주도의 갈등은 '제주 용암수'의 국내 판매 여부를 두고서 벌어졌습니다. 제주도 측은 오리온이 국내 판매를 안 하겠다고 해서 사업을 허가해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리온의 '제주 용암수'가 국내에서 판매될 경우 기존의 '제주 삼다수'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어 중국 등 해외 판매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오리온의 경우 국내 판매를 통해 제품 경쟁력 등이 입증돼야 중국 등 해외 시장 진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원 지사와의 면담을 통해 국내 판매 계획을 분명히 밝혔다는 게 오리온 측의 설명입니다.

이에 따라 원 지사와 오리온 경영진의 면담에서 도대체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면담 녹음파일이나 속기록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원 지사의 '입'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원 지사가 기자들에게 정제되지 않은 언급들을 쏟아낸 셈입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도지사로서 내놓은 공식적인 발언이 이처럼 부실했다는 점은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어쨌든 제주도의 설명대로 양측은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고 합니다. 다만 합의 여부와는 별도로 한 번 짚어볼 만한 점은 있습니다. 오리온의 생수 제품 개발은 3년 전부터 진행돼왔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왜 출시를 공식 발표한 이후에야 이런 잡음이 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제주도의 주장대로 지속적으로 국내 판매는 안 된다고 했는데도 오리온이 무작정 밀어붙인 걸까요. 그렇다면 왜 진작 물 공급을 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놓지 않았을까요. 국내 판매 금지를 명시한 계약을 사전에 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다시 원 지사의 발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원 지사는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과의 면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원 지사는 "(담당) 부서에서 국내 공급은 안된다는 얘기를 계속하니까 오리온 측에서 '국내에서 못 팔면 중국에서 어렵다'라고 일방적으로 애로사항을 하소연하듯이 얘기를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면담을 "(허 부회장이) 인사하러 온 자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색을 하고 계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협상을 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인사"라는 게 원 지사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허 부회장과의 만남이 정말 '인사 자리'였을까요. 과연 허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원 지사라는 정치인과 한번 만나서 악수나 하려고 그 자리에 갔을까요. 허 부회장은 제주도와 사업을 하기로 한 오리온의 대표 자격으로 원 지사를 만난 겁니다. 이 자리에서 제주도 측과 오리온 사이의 '이견'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원 지사는 도지사로서 명확한 대책을 지시했어야 합니다. 

오리온 제주용암수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이 제주용암수 브랜드와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오리온 제공)

행여 정말 그 면담이 '인사 자리'였다고 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하소연'을 들었다면 실무진에게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게 바로 도지사가 해야 할 일일 겁니다.

게다가 이번 건은 단순히 민간사업자끼리 추진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제주의 지하수는 도민들의 공공재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공재산을 활용하는 사업이라면 도지사가 더욱 신경써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하소연을 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말 사업이 아니라는 겁니다.

원 지사는 "(오리온이) 처음부터 중국으로 진출을 하겠다는 것을 앞세워서 얘기를 했다"라며 "이 때문에 반대나 꼬치꼬치 따져보는 것 없이 아무런 계약이 체결이 안된 채로 왔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주도가 공공재를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대방과 명확한 계약도 없이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언급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봐도 이번 사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일 겁니다. 소비자들 중에서는 제주 용암수가 건강에도 좋고 맛도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도 계속 구매하려는 이들이 있을 건데요. 제주도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앞으로 제주 용암수를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게 됩니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마음껏 마실 수 있는데 말이죠. 

물론 오리온 역시 이번 사태에 절반의 책임이 있습니다. 제주도가 그간 실제로 '제주 용암수'의 국내 판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지속해 표현해왔다면 어떻게든 타협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합니다. 명확한 계약도 없이 끌어오다가 제품이 출시된 후에야 구체적인 협의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제주도든 오리온이든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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