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수수료 체계 변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기존 정액 광고·수수료 체를 사실상 폐지하고 정률제로 전환하면서 반발을 샀다. 특히 그동안 상생을 부르짖던 목소리가 무색하게 이번 개편으로 사실상 수수료 인상 효과를 보게 되면서 '배달의 민족'은 '배신의 민족'이 됐다.
수수료 중심의 수익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배민으로서는 고민 끝에 내놓은 조치였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업계에서는 "배민이 시기를 잘못 택했다"라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라는 변수를 고려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수수료 체계 변경 후폭풍에 대한 인식도 안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어떻게 바꿨길래
배민은 지난 1일부터 수수료 체계를 변경했다. 그동안 배민의 광고·수수료 체계는 '정액제'였다. 즉 배민앱을 통해 주문이 이뤄지더라도 따로 수수료는 받지 않았다. 대신 업주들에 월 8만 8000원(부가세 포함)을 내면 인근 1.5㎞ 반경에 있는 소비자에게 해당 매장이 노출되는 방식의 '울트라콜'을 운영해왔다. 울트라콜을 이용하는 업체는 배민앱 상단에 노출된다. 그만큼 소비자의 눈에 많이 띄게 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울트라콜을 이용한 '깃발꽂기'다. 자금이 넉넉한 업체들은 월 8만 8000원짜리 울트라콜을 다수 구매해 배민앱에 중복 노출시킨다. 이렇게 되면 배민앱 상단에 해당 업체가 계속 노출되면서 소비자들의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특정 지역에 '깃발을 꽂는다'고해 '깃발꽂기'로 불린다. 이럴 경우 자금력이 부족한 영세업체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배민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 광고·수수료 체계를 개편했다. '오픈 서비스'다. 우선 그동안 받지 않았던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배민앱을 통해 주문이 성사될 경우 건당 매출의 5.8%를 받는다. 대신 문제가 됐던 울트라콜은 업체당 3개로 제한했다. 배민은 이를 통해 '깃발꽂기'를 방지하고 영세업체들도 맛과 품질로 승부를 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수료도 기존 울트라콜 수수료와 비교해 1% 포인트 낮췄다. 배민이 밝힌 대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실제로 요기요의 경우 12.5%, 미국의 그럽허브는 13.5%, 영국의 저스트잇은 15~20%, 동남아의 그랩푸드는 20~25%의 수수료를 받는다. 배민은 이를 통해 영세업체와 신규 사업자들은 비용이 줄어든다는 논리를 폈다. 좀 더 많은 업체들이 배민앱을 통해 좀 더 쉽게 사업을 영위토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 강력한 반발에 고개 숙인 배민
하지만 직접 배민앱을 통해 주문을 받는 자영업자들의 저항은 극심했다. 새로운 광고·수수료 체계로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주장이다. 기존에는 울트라콜만 운영하면 됐지만 이제는 매출에서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떼가는 만큼 부담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매출이 높은 가게일수록 수수료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즉 기존에는 울트라콜 3, 4건을 이용하면 월 26만 4000원에서 35만 2000원 내면 되던 것이 월 매출 1000만원 업체는 58만원, 월 매출 3000만원 업체의 경우 174만원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소상공인협회는 "단순히 수수료 부담이 늘어났다는 의미를 넘어서 임대료, 인건비 등 고정지출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의 순이익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자 정치권도 나섰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독과점 횡포가 시작되는 것 같다.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면서 "독과점 배달앱의 횡포를 억제하고 합리적인 경쟁체계를 만드는 방법을 강구해야겠다"라고 밝혔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도 "배민 수수료 인상에 대해서는 팩트 체크를 하겠다"라고 했다. 여권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배달의 민족 수수료율이 과도하게 책정된 부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배민을 운영하는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나섰다. 김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외식업주들이 어려워진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새 요금 체계를 도입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면서 "즉각 오픈서비스 개선책 마련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광고·수수료 체계 변경의 후폭풍이 예상외로 크자 서비스 개편 6일 만에 고개를 숙인 셈이다.
◇ '안일한 대응' 부메랑 되나
업계에서는 이번 배민의 광고·수수료 체계 개편에 대해 "시기가 적절치 못했다"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배민의 이번 광고·수수료 체계 변경은 소위 '깃발꽂기'를 방지하고 영세업체들에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 끝에 내놓은 정책이다. 그 이면에 배민의 숨은 속내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코로나 19 확산으로 외식업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 굳이 이런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배달앱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배민이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바라봤다는 비판도 나온다. 배민은 작년 말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되며 국내 배달앱 시장의 99%를 차지하게 됐다. 따라서 향후 국내 배달앱 시장에서 DH의 영향력은 더 막강해질 전망이다. 그러다 보니 배민이 강력한 시장지배력만 믿고 '밀어붙이면 된다'라는 생각을 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배민은 현재 DH와의 기업결합 심사를 앞두고 있다. 공정위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하면 DH와의 합병은 불가능하다. 배민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대목이다. 하지만 배민의 성급한 광고·수수료 체계 개편으로 향후 배민과 DH와의 기업결합 심사가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공정위도 철저한 조사를 예고했다. 배민의 안일한 상황 인식과 막강한 지배력에 대한 과신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민에게 업주들은 동반자이자 지금의 배민을 만들어준 1등 공신들"이라며 "그럼에도 코로나 사태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업주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수익을 높이겠다고 나섰으니 극심한 반발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업주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배민이 현재의 국내 배달앱 시장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