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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DH, '친자' 버리고 '양자' 선택한 이유

  • 2020.12.29(화) 15:32

공정위 "DH, 배민 인수하려면 요기요 매각" 결론
DH "요기요 팔고 아시아 사업 확대 박차"

운명이 엇갈렸습니다.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는 조만간 모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의 곁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는 '딜리버리히어로' 가문이 아닙니다. 반면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딜리버리히어로의 새 가족이 됩니다. 사실상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가 됩니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가 이런 방안을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말이 안 된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당시 공정위는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에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을 사려면 요기요를 팔라는 파격적인 심사 결과를 전했는데요.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두 기업 합병을 사실상 불허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관련 기사 ☞ 공정위의 교묘한 '불허'…배민·요기요 통합 안개 속

그럴 만도 합니다.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을 사려 했는데 주력 브랜드인 요기요를 팔아야 하다니요. 이런 운명의 장난이 또 있을까요. DH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DH 관계자는 "공정위의 요기요 매각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추후 열릴 공정위 전원 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공정위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DH는 끝내 공정위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공정위는 지난 23일 전원 회의를 열고 이번 방안을 심사했는데요. 결국 28일 'DH가 배민을 인수하려면 요기요를 매각해야 한다'는 결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배달의 민족-요기요 배달앱 사용자 간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DH는 공정위의 결론에 즉답을 내놨습니다. 공정위의 결정을 수용해 요기요를 매각하고 배민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공정위가 최종 결론을 내놓은 지 겨우 몇 시간 뒤 이런 발표를 했으니 이미 어느 정도 준비한 대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DH 측은 공정위 전원 회의 심리에서도 공정위가 요기요 매각을 끝까지 요구한다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DH는 왜 요기요를 팔면서까지 배민을 인수하려 할까요. 공정위의 결정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모양새이긴 합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공정위 결정에 불복하기보다는 이 방안에 따르는 게 낫다는 계산을 했을 겁니다. DH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니콜라스 외스트버그 DH 창업자 겸 CEO는 "우아한형제들과의 협업을 실현하는데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돼 감격스럽다"면서 "김봉진 의장을 식구로 맞이하게 돼 기대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시아 전역에 우리 입지를 확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발언 중 주목해야 할 곳은 '아시아'입니다. 우아한형제들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은 앞으로 우아DH아시아의 의장이자 집행이사를 맡아 아시아 사업을 총괄합니다. 우아DH아시아는 DH와 우아한형제들이 절반씩 투자해 만든 합작 법인입니다. 

앞서 DH는 지난해 12월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김 의장을 내세워 아시아 배달음식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결국 아시아 시장 공략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요기요를 매각하더라도 예상만큼 큰 타격을 받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지난해 DH코리아의 시장점유율은 거래액 기준으로 20.9% 수준입니다. 배민(78%)의 3분의 1 수준에 그칩니다. DH 본사 자금력으로 버텨오긴 했지만 배민과 요기요의 격차는 수년간 좀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쿠팡이츠와 위메프오 등 새로운 업체들이 시장에 진출해 경쟁은 더욱 심화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DH는 배민을 인수하더라도 요기요 역시 사업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배민은 배민대로, 요기요는 요기요대로 각개전투를 하겠다는 겁니다. 차라리 한 곳에 집중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집중해야 할 곳은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하는 배민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요기요는 누가 사게 될까요. 쿠팡이츠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쿠팡이나 플랫폼 업체인 네이버, 카카오 등이 거론됩니다. 롯데나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유통 대기업 이름도 나옵니다. 국내 배달 앱 시장이 워낙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데다, 요기요가 2위 사업자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매물로 여겨집니다.

다만 요기요의 몸값이 2조 원 정도라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DH는 6개월 안에 요기요를 매각해야 합니다. 매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추가로 6개월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1년 안에 2조 원을 마련해 배팅하기가 쉽지는 않으리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결국 인수합병 시장 큰손인 사모펀드가 나서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DH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경쟁력 있는 기업에 요기요를 내주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런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니 골치가 아플 듯합니다.

딜리버리히어로는 독일 기업입니다. 이번 결정으로 '배달의민족'은 '게르만민족'이 됩니다. 반면 독일계 브랜드였던 요기요는 한국 기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앞으로 국내 배달앱 시장이 또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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