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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고공행진' 우윳값, 낙농가만 웃는다

  • 2020.08.10(월) 09:53

'원유가격연동제'로 우윳값 또 상승…ℓ당 21원 ↑
낙농진흥회, 제도개선 약속 불구 우려는 여전

'흰우유'라고 불리는 원유(原乳)는 식품업계의 피(血)로 불립니다. 버터와 치즈, 조제분유, 발효유 등과 이를 원료로 사용하는 커피와 빵, 과자, 아이스크림 등 우유가 식품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우유 생산량은 풍족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207만 톤의 원유가 국내 낙농가에서 생산됐습니다. 2011년 구제역 사태 때에도 188만 톤의 원유가 생산됐으며 지난 2014년에는 221만 톤으로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원유는 국내 유가공업체가 전부 사들입니다. 지난해 생산된 원유 204만 톤은 전부 국내 유통업체가 매입했습니다. 원유를 모두 사들이고 있는 식품업계는 항상 다양한 유가공식품을 개발하며 사들인 원료의 소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 국민 1인당 원유소비량은 지난 2010년 64㎏에서 지난해 81㎏으로 26% 증가했습니다. 이런 성과는 식품업체들이 다양한 유제품을 개발한 덕분입니다. 

이 기간 마시는 우유와 발효유, 치즈 등 1차가공 유제품의 1인당 소비량은 연간 45~47㎏ 수준을 오르내리며 큰 변화가 없습니다. 증가분은 대부분 우유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의 판매 증가 덕분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우유 소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초·중·고등학교들의 개학 연기와 소비시장의 위축이 맞물리면서 우유 소비량은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8만 8951톤이던 원유 재고량이 지난 6월 기준 14만 6121톤으로 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담은 모두 식품업계가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낙농가는 우유를 생산만 하면 모두 사주는 곳이 있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반면 식품업계는 사들이기 싫어도 사들여야 합니다. 게다가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 싸게 사들이고 싶어도 이미 계약된 가격에 매입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낙농가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원유가격연동제' 때문입니다.

최근 낙농진흥회는 식품업체가 낙농가로부터 사들이는 원유 가격을 기존보다 ℓ당 21원 올린 1055원으로 확정했습니다. 이는 가장 최근에 인상했던 지난 2018년 ℓ당 4원 인상보다 5배가량 오른 것입니다.

올해 우유소비가 어렵다 보니 국내 24개의 유가공업체 중 14개 업체는 공급량을 줄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되레 가격은 올랐습니다. 심지어 올해 예상되는 원유 생산량은 전년 대비 2%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우유가 남아돌고 있는데 우유가격을 올려야 하는 것은 시장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생기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는 지난 2013년 원유가격연동제가 도입된 이후 꾸준히 지적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낙농가는 꿈쩍도 안했습니다. 오히려 매년 생산량을 늘려왔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낙농가의 수익률은 25% 이상입니다. 가까운 일본(14%)보다 높고 원유강국인 미국(11%), 뉴질랜드(13%) 등보다 두 배 이상 남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 원유가격연동제 덕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을 맞은 올해는 도가 지나쳤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비난의 수위가 높았기 때문일까요. 최근 낙농진흥회는 원유가격연동제를 손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인상이 결정된 원유가격도 내년 8월부터 적용키로 했습니다. 

낙농가는 반발했습니다. 현행 원유가격연동제는 낙농가 입장에서는 무척 '아름다운' 제도입니다. 가격인상 적용 시기를 미뤄주기까지 했는데 제도를 손보겠다고 하니 낙농가 입장에서는 화가 날겁니다. 반면, 식품업계는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우려는 여전합니다. 새로운 원유가격연동제의 선정절차를 낙농가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낙농진흥회 주도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최근 열린 낙농진흥회 이사회에서 지난 수년간 원유가격협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윤성식 낙농진흥회 이사(연세대 교수)는 "현행 연동제에서는 위원장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낙농진흥회 내부에서도 이 제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새로 만들어질 제도에 대해 업계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쉽다는 뜻입니다. 나라 전체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유는 우리 몸에 참 좋다고 합니다. 우유를 사 먹는 우리도, 우유를 생산하는 낙농가도, 그리고 우유를 팔아주는 업계도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고통은 나눌 수록 가벼워진다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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