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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총알배송'의 그림자

  • 2020.11.03(화) 10:43

택배 노동자 잇따른 사망…택배3사 부랴부랴 대책 발표
추가 인력 투입·심야 배송 중단…"근본 대책 마련" 목소리도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얼마 전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포털사이트에는 '배송 조회'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습니다.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매해놓고 택배가 어디쯤 왔나 궁금해 조회해보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대부분 하루 이틀이면 택배가 도착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조바심이 나곤 합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배송 조회'가 오를 정도니,택배를 기다리는많은 소비자들의 답답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실시간 CJ대한통운 물류창고'라는 이름의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류 창고에 엄청난 양의 택배가 쌓여 있는 사진인데요.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측은 '지연된 택배 물량은 극히 일부이며 해당 사진 역시 간선 차량 문제로 잠시 택배를 쌓아뒀던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하지만 '배송 지연'을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소비자들은 이 사진에 대부분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모두가 '택배 지연'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넘쳐나는 택배 물량으로 숨 쉴 틈 없는 '하루'를 보내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택배 노동자'들입니다.

추석 연휴가 지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세 명의 노동자가 과로사 등으로 사망하면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특히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카카오톡 메시지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한진택배 소속의 김 모 씨가 사망 며칠 전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해야 했던 그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형 택배 회사들은 일제히 고개 숙이며 대책을 쏟아냈습니다. 먼저 국내 택배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의 경우 박근희 대표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택배 기사의 인수 업무를 돕는 분류 지원에 4000명의 인력을 투입하고 개별 택배기사에 부담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는 '초과물량 공유제' 등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한 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그러자 업계 2~3위 업체인 한진택배와 롯데글로벌로지스도 대책을 내놨습니다. 한진의 경우 오후 10시 이후 심야 배송을 중단하기로 했고요. 택배 분류 지원 인력으로 1000명을 투입하겠다고 했습니다. 롯데의 경우 역시 같은 업무에 1000명을 투입하고 택배기사의 하루 배송 가능량을 산출해 업무량을 조절하겠다는 내용을 내놨습니다.

아울러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 역시 배송 기사의 근무 환경을 기존과는 다르게 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쿠팡은 최근 국토교통부에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자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는데요. 이제 쿠팡도 택배 사업자로서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바로 직고용, 주5일 근무, 주 52시간 근무 등입니다. 최근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가 이슈가 되자 좋은 근로 조건으로 택배 사업을 운영하겠다고 강조한 셈입니다.

택배 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일단 이런 대책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CJ대한통운이 발표한 대책에 대해 "대책위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내용으로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점은 '분류 지원 인력 투입'의 비용을 누가 대느냐입니다. 대책위는 이 비용을 기업이 모두 떠안아야 마땅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또 택배 3사가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인력 추가 투입 방안에 '단계적'이라는 표현을 쓴 점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장 인력을 투입하기보다는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 끌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결국 택배 3사가 당장의 비판 여론에 어쩔 수 없이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과연 약속대로 지킬지에 대해서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내놓은 대책으로 이번 사태가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정치권에서도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는 우선 지난 국정감사에서 크게 이슈가 됐습니다. 아울러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막을 수 있는 법을 제정하겠다거나 기존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등의 움직임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택배업계가 지난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운영함에 따라 이날 하루 대형 택배사들의 택배 배송이 중단됐다. 서울 영등포구의 택배 물류센터 모습. /이명근 기자 qwe123@

택배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에 대한 문제는 수년 전부터 지적돼 온 바 있습니다. 최근 온라인 쇼핑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택배 기사들의 부담 역시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8월에 택배 없는 날을 지정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제 8월 14일은 매년 택배 없는 날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추석 연휴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이 들려오면서 '택배 없는 날'은 큰 의미가 없는 '이벤트성' 처방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택배기사가 주 5일 근무를 하도록 도와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는데요. '택배 없는 날'처럼 이벤트성으로 처방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정치권이 나서고, 해당 택배 업체들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만큼 이번이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들도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일단 배송비 문제부터 볼까요. 지난 2019년 기준으로 국내 택배 단가는 건당 2269원 수준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건당 택배비가 5000원을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택배 요금이 '헐값'이 된 원인은 택배 업체들의 과도한 출혈경쟁 때문이긴 합니다.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낮아진 가격을 다시 올리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소비자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필요한 일입니다.

당장 하루 이틀 택배가 늦어져도 양해하는 '마음'도 필요할 듯합니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도 겪었듯이 물량이 많이 몰리면 어느 택배 업체라도 배송이 지연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삶에 큰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겁니다. 청와대에 청원을 올린 이의 목소리처럼 주 5일을 보장해주려면 소비자들 역시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택배 관련 노동자 단체들은 사회적 대화 기구인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고 주장합니다. 이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일 듯합니다. 잇따른 사망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 사태를 계기로 '총알 배송'의 그림자가 차츰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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