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온플법) 제정이 사실상 차기 정부로 미뤄졌다. 여야 모두 온플법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에도 '대선'이라는 거대 이벤트를 앞두고 법을 처리하는데 따른 '역풍'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대선 이후에도 온플법의 빠른 처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윤석열 양 후보의 플랫폼을 바라보는 온도차가 있어서다. 이 후보는 플랫폼의 '관리'에 주력한다. 사업 운영부터 산업 종사자 모두에게 법과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반면 윤 후보는 법 제정에 앞서 시장의 자율적 상생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바라보는 플랫폼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온플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부담이 늘긴 하겠지만, 사회적 책임의 '기준'이 정해진다면 효율성을 보다 높일 수 있어서다. 다만 치킨게임식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장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온플법, 결국 차기 정부로 밀렸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20일 중기중앙회 정책간담회에서 올해 주요 정책으로 온플법 제정을 언급했다. 플랫폼과 납품업체간의 갑을문제, 독점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1월 6일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및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심사지침' 제정안을 행정예고한 바 있다. 이 지침에는 납품업체의 경쟁 플랫폼 이용을 방해하거나, 더 유리한 혜택을 요구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조 위원장의 이런 언급은 온플법 처리가 사실상 차기 정부로 넘어간 것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온플법은 지난 11일 종료된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온플법이 1년간 계류한 법안이고, 여야 공감대가 있는 만큼 빠른 처리를 요구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논의의 부족함과 대선 정국을 이유로 차기 정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선이 온플법 제정의 걸림돌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조 위원장은 정책간담회 이후로도 온플법 제정 실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27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한층 다가온 디지털 경제에서 포용적 시장환경을 만들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디지털 공정경제 정책의 입법을 추진했지만 다소 늦어지고 있는 점이 아쉽다"며 "온플법 제정을 통해 사각지대에 놓인 입점업체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시장이 자율적 상생 생태계를 만들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재명 vs 윤석열, 플랫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다만 온플법이 대선 이후 순조롭게 처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야 후보가 플랫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이 후보는 온플법 처리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어 관련 정책 역시 발표했다. 핵심 메시지는 '관리'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공개할 것을 논의하고, 수수료율 역시 공개 후 정부의 적정성 점검을 받도록 한다. 아울러 근로기준법 외 별도의 법을 제정해 플랫폼 산업 종사자의 권리를 보장한다. 단체구성권 및 협상권 보장도 검토한다.
윤 후보는 온플법에 대한 구체적 공약을 아직 내놓지 않았다. 다만 법적으로 플랫폼을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이다. 윤 후보는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봤다. 따라서 평상시에 알고리즘을 공개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수수료는 경쟁을 통해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 종사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다. 윤 후보는 별도 입법에 부정적이다. 사회보험제도 등 기존 제도로도 관련 이슈를 처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플랫폼 산업 성장과 함께 떠오른 '전국민 고용보험'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긍정적이었다. 이 후보는 전국민 고용보험을 현 정부 로드맵보다 빠르게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전국민 산재보험제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업무상 재해 위험이 높은 자영업자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 역시 전국민 고용보험을 현 정부에 이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관련 기관 설치도 검토한다.
규제 필요하지만 현실적 접근해야
플랫폼업계도 관리를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공감하고 있다. 규제가 강해질수록 플랫폼의 부담도 높아지지만,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플법 등은 특정 사건에 대한 플랫폼의 ‘책임 기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플랫폼업계는 제품과 노동 관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으로 비판받은 바 있다. 온플법 등 ‘규정’이 있다면, 이런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두 후보의 공약 모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먼저 이 후보의 공약은 과잉 규제라는 반발이 많다. 기업의 민감정보 공개를 강제하거나, 업계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법안 입법이 산업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온플법을 적용받지 않는 해외 플랫폼과의 역차별도 우려했다.
윤 후보의 공약은 플랫폼에게 유리하지만, 시장을 다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현재 플랫폼업계는 상대를 고사시키고 시장을 장악하려는 '치킨게임'식 경쟁에 휩싸여 있다. 배달플랫폼들은 버티지 못하고 수익성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책임한 자율은 곧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다. 자본력을 앞세운 소수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고, 독점 등의 문제를 불러올 수 있어서다. 따라서 자율과 관리 사이의 '균형'을 갖춘 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정책도 쏟아지고 있지만, 이들 중 균형을 갖춘 정책은 사실상 없다. 한 측의 입장만이 담긴 편향된 정책과 공약이 대부분으로 보인다"며 "한 쪽의 권리만을 중시하는 몰아주기식 정책으로는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유도하기 어렵다. 차기 정부는 시장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현실적 균형감이 담긴 정책을 도출하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