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어느새 3년차를 맞았다.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마스크가 상식이 됐고 해외여행은 추억 속의 일이 됐다. IT기술에 익숙하지 않았던 중장년층은 이제 이커머스를 능숙하게 활용한다. 그럼에도 코로나19의 기세는 그대로다. 일일 확진자 1000명에 경악하던 국민은 3만명이라는 숫자에도 덤덤하다. 2주씩 늘어나는 거리두기는 이제 일상이다. 짧고 굵은 방역은 이제 길고 굵은 방역이 됐다.
이런 상황에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은 원동력은 '희생'이었다. 모든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조금씩 양보했다. 두려움이 있더라도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희생은 더 컸다. 이들은 생계까지 잠시 내려놓았다. 조금만 있으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빚을 내 버텼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정부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정부도 최선을 다했다. 꾸준히 지원금을 지급했다. 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를 줄여주는 등 금융 정책적 지원도 이어졌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 1월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에게 300만원씩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1951년 이후 71년만의 1월 추경안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의지'만은 충분히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시선은 예전같지 않다. 한달 임대료도 되지 않는 금액이라는 비판이 잇달았다. “각자 살 길을 찾으라”는 지시나 마찬가지라는 날선 반응도 나왔다. 집단행동 움직임도 차츰 나타난다. 일부 자영업자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누군가는 삭발을 했다. 누군가는 방역지침을 어기고 야간에도 매장의 불을 밝혔다. 각자도생이라도 가능하게 해 달라는 목소리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지원금 폭이 타국 대비 적은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20년 일본은 GDP의 44%에 달하는 금액을 코로나19 지원에 투입했다. 미국은 GDP 19%를 코로나19 지원금으로 썼다. 반면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지원금은 GDP의 13.6% 수준이다. 심지어 정부의 순수 재정지출은 GDP의 3.4%에 불과했다. 다만 이것만이 소상공인·자영업자 집단행동의 이유는 아니다. 국가별 재정 상황이 다른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도 많다.
그럼 소상공인·자영업자는 왜 정부에 반발하고 나섰을까. 이들은 정부의 '메시징 전략'이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한다. 지난해 말 5년간 운영한 가게를 접은 30대 자영업자 A씨는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믿었고, 상황이 나아질 것이니 방역에 동참해 달라는 정부의 메시지를 믿었지만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며 "지원금도 피해 복구에는 턱없이 모자랐고 거리두기만 강화됐다. 결국은 진즉에 가게를 접는 게 최선이었다는 생각도 든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정부는 코로나19 초기부터 명분을 앞세운 메시지를 내놨다. 이렇게 해야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상황이 나아질 때에는 코로나19 종식이 머지 않았다는 희망찬 메시지를 내놨다. 이 중 현실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변이종이 등장했고 확진자가 폭증했다. 방역패스와 같은 정책은 법원에서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같은 명분으로 거리두기를 계속 연장했다. 소통 방식도 비슷했다. 듣는 만큼 행동이 따르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과에는 인색했다.
지금도 정부의 메시징 전략에는 변화가 없다. 정부는 오미크론 변이 유행이 안정화되면 코로나19를 계절 독감처럼 관리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거리두기는 또 2주 연장됐다. "조금만 더 버티라"는 희망고문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전문가들은 아직 코로나19를 독감과 비교할 수는 없다며 정부의 메시징 전략을 지적했다. 더 지켜봐야 하고, 의료체계의 여력도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거리두기의 빠른 완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자영업자·소상공인이 거리로 나선 이유다. 단순히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다. 이들의 유력 대선후보들이 내놓는 큰 폭의 지원금 증액 공약에 대한 기대감도 높지 않다. 본질은 '신뢰'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은 더 이상 정부의 메시지를 믿지 않는다. 따라서 명분을 앞세운 일방적 희생 요구를 거부한다. 차라리 스스로 계획이나마 짤 수 있는 '판'을 깔아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의 절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물론 현재 상황이 정부의 탓만은 아니다. 하지만 명분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인정해야만 정당해진다. 정부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지켜줄 수 없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틀이라도 마련해 줘야 한다. 당분간 코로나19의 종식은 어렵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상처를 치료할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 그렇다면 벌어진 상처나마 빨리 치료해야 한다. 치료법이 합당한 보상이든, 합리적 지침이든 말이다. 명분을 앞세워 더 이상 희생할 것을 요구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결코 '당연한' 희생이라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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