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부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PEF에서 듣다
롯데그룹이 본격적인 하반기 전략짜기에 나섰습니다. 롯데는 매년에 상반기 한번, 하반기 한번 VCM(Value Creation Meeting)이라는 것을 엽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그룹의 핵심 임원들과 계열사 대표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입니다. 과거에는 사장단 회의로 불렸습니다. 롯데그룹의 다음 스텝 전략을 공유하고 큰 방향을 설정합니다. 이번에는 부산에서 개최했습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지원을 위해섭니다.
롯데의 VCM은 강연으로 시작합니다. 롯데가 당면한 경영 환경 등에 대한 큰 담론이 주제입니다. 올해 하반기 VCM에서는 김광일 MBK파트너스 대표가 강연자로 나섰습니다. ‘턴어라운드 실현을 이끈 사업 경쟁력’이 주제였습니다. 롯데그룹은 현재 여러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력인 유통은 물론, 또 다른 성장축의 하나인 케미컬 사업도 예전만 못합니다. 각 사업에서 '턴어라운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MBK파트너스는 국내 대표 사모펀드 운용사입니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후 해당 기업을 매각해 차익을 남기는 일에 전문입니다. 롯데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군들은 대부분 경영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업들입니다. 최근 세계 경제는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균열이 주된 이슈입니다.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전 산업이 휘청이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사모펀드는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전문입니다. 롯데그룹이 이번 VCM을 여는 강연자로 김광일 MBK파트너스 대표를 선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MBK파트너스의 전략을 통해 롯데가 어떤 돌파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를 엿보려는 의도라는 분석입니다.
성과를 내야 할 첫해
강연이 끝난 이후 본격적인 VCM이 시작됩니다. VCM의 진행 방식은 매년 대동소이합니다. 그룹 신사업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비전과 추진 로드맵을 검토합니다. 각 사업군별 경영 환경과 전략 방향도 논의합니다. 이후 신동빈 회장이 경영진들에 대한 당부의 말과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주로 기사화되는 것은 신 회장의 메시지입니다. 기자들은 그의 메시지 속에서 숨어있는 힌트를 찾기에 골몰합니다.
아시겠지만 그룹 총수의 메시지들은 대부분 두루뭉술합니다.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렇고 또 저렇게 보면 저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룹 총수의 메시지에서 구체적인 방향이나 전략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신 회장의 VCM 발언에는 확실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변화'입니다. '굼뜬 공룡'인 롯데가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습니다.
그 결과물이 작년 말에 있었던 조직개편과 인사입니다. 롯데그룹은 기존 BU조직에서 HQ조직으로 변화를 줍니다. 기존 BU체계와 달리 HQ에는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합니다. 독립적으로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면서 성과를 내라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외부 인사를 대거 영입합니다. 롯데의 '순혈주의' 파괴는 당시 업계에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올해는 신 회장이 그간 수없이 주문했던 변화에 대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첫해입니다. 롯데는 그동안 변화에 둔감한 기업으로 유명했습니다. 덩치가 크다 보니 움직임이 굼떴고 그러다 보니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신 회장이 가장 답답해하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신 회장은 내부에서 문제점을 찾았습니다. 이 때문에 외부의 시선으로 내부를 바라보고 변화의 불씨를 당겨주길 원했습니다. 올해가 그 시작입니다.
'성공 공식'이 바뀌었다
이번 VCM에서 엿볼 수 있었던 것은 롯데가 변화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롯데는 그동안 주력 사업인 유통에만 집중해왔습니다. 그러다 신 회장 주도로 케미컬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진출해 그룹 성장의 한 축으로 육성합니다. 그 덕에 롯데는 한동안 성장가도를 달립니다. 하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 직격타를 맞은 것을 시작으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유통이 근간이던 롯데는 휘청이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렸던 고질적인 내부 문제로 롯데는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습니다. 롯데의 입장에서는 그룹의 생존을 위한 또 다른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최근 롯데가 새로운 사업으로 낙점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헬스&웰니스 △모빌리티 △바이오 CDMO △헬스케어 플랫폼 △전기차 충전 인프라 등이 그 변화의 시작입니다.
롯데의 성장 방식은 대체로 규칙적입니다. 신 회장이 그룹의 총수가 된 이후 이런 공식은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근간 사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는 방식입니다.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과감한 M&A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그룹 내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도모하는 것이 롯데의 성장 공식입니다. 최근에도 롯데는 과감한 투자와 M&A를 단행했습니다. 이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셈입니다.
다만 과거에는 주력 사업에 대한 투자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신사업에 대한 투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룹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유통과 케미컬 등의 사업군에 대해서는 대규모 투자보다는 사업의 내실을 키우는 디테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신 바이오, 모빌리티 등 새롭게 진출하는 사업군에 대해서는 기존 업체들과의 격차를 빨리 줄이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고삐를 죄다
롯데의 신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 이면에는 신 회장의 의중이 반영돼있습니다. 신 회장은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던 내부적인 문제는 외부 수혈로, 신사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투자로 전폭적인 지원을 다했습니다. 이제 공은 각 사업군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직개편과 적극적인 외부 인사 영입, 신사업 선정과 투자 등으로 변화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준 만큼 각 사업군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할 차례입니다.
신 회장은 이번 VCM에서 간접적으로 각 사업군 수장들의 고삐를 죘습니다. 신 회장은 “금리 인상, 스태그플레이션 등으로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매출, 영업이익 등의 단기 실적 개선에 안주한다면 더 큰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사업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단기적 성과보다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장기적인 성과의 기반을 만들라는 주문인 겁니다.
신 회장의 압박은 더욱 거세집니다. 그는 외부의 시선에서 보기에도 롯데의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로 '시가 총액'을 들고 "자본시장에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원하는 성장과 수익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달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신 회장은 종전과 달리 VCM 내내 뒷좌석에 앉아 경청했습니다. 롯데에서는 발표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아무리 좋은 상사라도 상사가 같은 자리에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니까요. 오히려 뒤에 앉아 전체를 내려다보며 더 강하게 고삐를 죌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신 회장의 날선 주문을 받은 롯데 경영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경영진들의 고민이 깊어질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