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부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의무 휴업일 전날의 풍경
동네 대형마트 주차장 입구가 유난히 붐빌 때가 있습니다. 마트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량들 탓에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가 정차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버스를 타려는 손님들은 양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차도로 나옵니다. 차량과 사람들로 뒤엉켜 위험천만입니다. 빵빵대는 차량들의 경적소리까지 겹치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입니다. 다음 날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인 토요일 오후 저희 동네 대형마트 주변 풍경입니다.
대형마트 주차장 진입로가 붐비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불편합니다. '의무 휴업일'을 만든 정부가 원망스럽습니다. 저도 재래시장을 좋아합니다. 재래시장만이 주는 특유의 활기참이 좋습니다. 상인분들과 흥정도 재미있습니다. 맛있는 먹을거리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 근처에는 재래시장이 없습니다. 대형마트가 쉬는 날이면 집 근처 SSM(대기업 계열 슈퍼마켓)도 쉽니다. 장 볼 곳이 없습니다. 결국 거리가 좀 있는 식자재 마트로 향합니다. 저희 동네 식자재 마트의 신선식품 품질은 대형마트에 비해 떨어집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사야 합니다.
아내는 가끔씩 제게 장 볼 것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제가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해 집에서 자주 직접 요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보다 제가 집 냉장고 속 사정을 더 잘 압니다. 주말이면 주방에서 칼을 잡은 지 벌써 10년 넘었네요. 매주 우리 집 반찬 메뉴와 식단을 머릿속에 그려둡니다. 두고 먹을 반찬과 그때그때 해먹을 반찬을 위한 식재료를 미리 구비해둬야 마음이 편합니다. 언제든 꺼내서 요리할 수 있으니까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아내와 저는 주로 대형마트에서 장을 봤습니다. 물건을 직접 보고 고를 수 있어서입니다. 아내는 온라인을 불신했습니다. 신선식품은 절대로 온라인을 통해 구매해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아서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자 아내도 어느샌가 온라인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매주 날아오는 온라인 할인 쿠폰에 집착합니다. "3만원 이상이면 무배인데 더 살 것 없어?"라고 묻습니다.
대형마트는 '적(敵)'이었다
이번 주 유통업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것은 아마도 '대형마트 규제 완화'였을 겁니다.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대형마트 업체들의 숙원 사업입니다. 지난 2012년 정부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유통산업발전법'을 내놨습니다. 핵심은 대형마트 규제입니다. 대부분 지역의 대형마트와 대기업 계열 SSM은 매월 두 번째, 네 번째 일요일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평일에도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문을 열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대형마트의 온라인 주문을 통한 배송도 금지했습니다. 전통상업보존구역에는 사실상 출점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더불어 대형마트가 신규 출점하려면 주변의 상권영향 평가 등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야말로 대형마트를 옥죄기 위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탓에 대형마트의 매장 수는 급감했고 매년 수익성도 악화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정부에서 지급했던 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도 대형마트는 제외됐습니다. 이를 두고 당시 대형마트 업계에서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대형마트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의 후폭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습니다. 재난지원금은 그나마 대형마트들이 숨통이 트일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제외되면서 대형마트들은 버티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대형마트 규제로 국내 대형마트 업체들은 그야말로 고사(枯死) 위기까지 몰렸었다"며 "전통 시장을 살리겠다는 명목하에 대형마트는 그 고통을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인센티브 등은커녕 오히려 규제의 강도만 더욱 세졌다. '대형마트는 적(敵)'이라는 인식이 정부 내에 확고히 자리 잡으면서 대형마트는 그야말로 동네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온라인 배만 불린 대형마트 규제
그렇다면 당시 정부가 대형마트를 잡기 위한 명분으로 내세웠던 재래시장 살리기는 성공했을까요? 지난 2010년 1517개였던 전국의 전통시장 수는 2020년 1401개로 줄어들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 때 49.5%가 온라인과 동네 슈퍼마켓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통시장을 이용한다는 답변은 16.2%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대형마트를 규제해 소비자들을 재래시장으로 유인하겠다던 정부의 생각이 빗나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부가 대형마트를 옭아매자 소비자들이 향한 곳은 재래시장이 아니라 온라인이었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국내 온라인 시장은 급성장했습니다. 쿠팡, 머켓컬리 등이 크게 성장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상반기 주요 유통 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1.5% 줄었습니다. 대형마트와 같은 규제를 받는 SSM도 1.9% 감소했습니다. 반면 같은 오프라인 중심의 백화점은 명품 수요 덕에 18.4% 증가했고 편의점은 10.1%, 온라인 유통 업체는 10.3% 증가했습니다. 이런 추세는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왔습니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정부의 대형마트 규제로 대형마트들은 이제 편의점에도 밀리는 형국이 됐습니다. 이커머스 업체들과 편의점 등은 대형마트의 빈틈을 치밀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 틈은 정부가 만들어준 틈입니다. 대형마트의 손과 발을 모두 묶어두면 재래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일차원적인 생각이 만든 현상입니다.
김은 빠졌지만
지난 10년간 규제에 눌려 옴짝달싹 못했던 대형마트 업체들이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겁니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 경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국민 제안을 통해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전해졌습니다. 정부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제스처를 보이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대통령실은 당초 온·오프라인으로 접수된 국민제안 1만3000여 건 중 민관 합동심사위원 심사로 선정된 10건에 대한 온라인 투표를 거쳐 상위 3건을 국정에 반영할 계획이었습니다.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투표 결과 57만7415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연히 국정에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투표 과정에서 드러난 중복 전송 문제로 대형마트 규제 완화 선정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대통령실이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반발하는 소상공인 등을 의식해 국정 반영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업체들의 입장에서는 지난 10년간의 암흑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가 다소 김이 빠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논의가 이만큼이나마 진전됐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소상공인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더불어 국민제안을 통해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안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대한 의견수렴 작업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최근 규제심판회의를 열고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산 넘어 산' 그래도 희망은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의견 수렴 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규제 완화에 나서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 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해당사자들 간의 이익 충돌이 첨예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소상공인들은 물론 국민들의 눈치도 봐야 하는 만큼 매우 신중한 접근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국회의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난관 중 하나로 꼽힙니다. 현재 국회는 '여소야대'입니다. 야당인 더불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는 만큼 쉽게 성사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정부가 대형마트 규제 완화와 동시에 소상공인들과의 상생방안을 강구한다면 꼭 실현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든 10년간 얽혔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릴 기미를 보인다는 점은 반가운 일입니다. 대형마트 규제의 가장 큰 명목이었던 재래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는 실패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아울러 국민들의 편익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재래시장보다 대형마트를 선호하고 그동안 대형마트 규제 탓에 불편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업계에서도 비록 논의 과정이 다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논의가 시작됐다는 자체만으로도 반갑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는 그만큼 지난 10년간 대형마트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금껏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처럼 이슈가 됐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면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울 따름"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