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통업계는 NFT(대체불가능토큰)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화제성이 높은 NFT 시장과 연계해 손쉽게 브랜드를 알릴 수 있다는 건데요. 이미 롯데홈쇼핑·신세계백화점·갤러리아백화점·SPC·롯데GRS 등 주요 유통·식품 기업들이 잇따라 NFT를 내놓으며 시장 분위기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최근 나온 NFT 마케팅 소식만 한 번 모아 볼까요. SPC그룹은 지난주 파리바게뜨의 실키롤케익 기네스북 등재 2주년을 기념해 실키롤케익 NFT 판매에 나섰습니다. 파리바게뜨의 스테디셀러인 실키롤케익의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진 NFT인데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롤케익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 합니다.
SPC도 출시 전·후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알렸습니다. 파리바게뜨 측은 판매가 이뤄진 14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NFT 전문 거래 플랫폼을 통해 실키롤케익 NFT 판매를 진행, 시작 30분 만에 한정 수량 300개가 모두 판매됐다"고 밝혔는데요. 창립기념일을 더욱 특별하게 기념하고자 풍성한 혜택에 기부 의미까지 더한 것이 많은 분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 같다"고 흥행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지난달 말에는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가 '롯데리아 불고기버거 NFT'를 내놨습니다. 팝업 스토어 'BULGOGI LAB 9222'를 알리기 위한 이벤트였는데요. 팝업스토어에 참여한 1992년생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해 1992개의 NFT를 제작, 완판에 성공했습니다.
이에 앞서 롯데홈쇼핑도 자체 캐릭터 '밸리곰'을 활용한 NFT를 내놨고 신세계백화점도 자체 캐릭터 '푸빌라'의 NFT를 선보인 적이 있죠. LG생활건강도 닥터그루트의 NFT를 선보였구요. 갤러리아백화점은 아예 NFT 작품들을 판매하고 매장에서 이를 이용한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메타버스에 이어 올해엔 NFT가 '뜨는 마케팅'으로 자리잡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최근 팔린 NFT들을 보면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NFT 자체의 작품성이나 상품성보다는 NFT를 구매하면 주는 할인쿠폰이나 교환권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SPC의 실키롤케익 NFT를 한 번 볼까요. 가격이 5500원입니다. 그런데 이 NFT를 구매하면 전국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실키롤케익 1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실키롤케익은 현재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1만1000원에 판매 중입니다. 사실상 이 NFT는 '실키롤케익 50% 할인권'인 셈입니다.
이 NFT는 오는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파리바게뜨의 '이달의 제품' 구매 시 하나를 더 제공하는 혜택까지 제공합니다. 5500원에 이정도 '득템'이라면 NFT가 아니라도 구매해 볼 만 합니다.
심지어 이 NFT는 구매 후 재판매 시 혜택이 사라집니다. 사실상 NFT 거래를 봉쇄해 놓은 셈입니다. 실제 실키롤케익 NFT 구매자 중 판매를 위해 상품을 내놓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롯데리아의 '불고기버거 NFT'도 비슷합니다. 이 NFT는 1992원에 판매됐는데요. 이 NFT를 구매하면 롯데리아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불고기버거 세트' 쿠폰을 제공합니다. 롯데리아 불고기버거 세트를 매장에서 구매하면 6600원이니, 70%가 할인된 가격입니다. 이쯤되면 도대체 내가 산 게 NFT인지 제품 할인 쿠폰인지 아리송해집니다.
물론 NFT 시장이 이제 시작 단계인 만큼, 이런 시도들이 모여 성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금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향후 어떤 가치를 인정받을 지 알 수 없다는 주장도 있죠. 이는 NFT 시장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와 별개로 업계가 이런 'NFT 쿠폰' 마케팅에 나서는 이유는 있습니다. 일단 최근 가장 핫한 트렌드인 NFT에 올라타 손쉬운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죠. 파리바게뜨가 롤케익 할인 쿠폰 1만개를 뿌리는 건 이슈가 되지 않지만 NFT 300개를 30분 만에 '완판했다'고 하면 이슈가 되니까요.
최신 기술인 NFT를 끼얹음으로써 '혁신'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유통·식음료 업계는 다소 보수적인 업계로 알려져 있는데, NFT 마케팅을 통해 최신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기업이 진짜로 자신들의 NFT에 할인쿠폰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쿠폰에 덤으로 NFT를 얹어 주는 '끼워팔기'에 몰두하기보다는, 작품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 조금 더 공을 들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짜 좋은 작품이라면, 쿠폰이 없어도 기꺼이 지갑을 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