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갈치, 조기 등 가격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수산물부터 가공식품까지 안 오른 게 없네요. 고기는 좀 더 할인하면 사려고요. 명절 먹을 음식 준비하려고 마트에 들렀는데 가볍게 돌아갑니다. 벌이는 적은데 물가만 올라서 큰일입니다." (마트서 만난 주부 A씨)
설 명절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18일.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에서는 주부들의 한숨 소리가 짙게 배어나왔다. 계란 한판이 7000원에 육박하는 등 고물가가 극심해서다. 예년 같으면 명절 준비를 위해 '손'이 커지는 기간이지만 올해는 잔뜩 허리띠를 졸라맨 모습이다. 마트에서는 할인 멤버십에 가입하려는 고객이 줄을 잇고, 전통시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깎으려는 '흥정'이 이어졌다.
부담스런 가격에 '들었다 놨다'
이날 오후 찾은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설 선물세트 코너. 직원 2~3명이 선물 안내에 한창이지만 고객의 발길은 좀처럼 닿지 않았다. 이곳에서 샴푸 세트와 육류 세트를 놓고 고민 중이던 한 중년 부부는 "장을 좀 봤는데 10만원이 넘는 비용이 나올 것 같다"면서 "지인들에게 줄 명절 선물을 골라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비싼 선물은 이번에 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고객 상담 코너에서는 멤버십 가입을 문의하는 고객이 적잖았다. 한 푼이라도 돈을 아끼려는 '알뜰 소비' 현상이다. 멤버십은 직접 할인율이 낮지만 회원 대상 할인 상품이 많다. 소비에 따른 포인트를 모아 현금처럼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명절은 마트가 회원 할인 제품을 대폭 늘리는 기간이다. 멤버십가로 한우 국거리, 불고기 등 육류를 30% 할인해 내놓는 식이다.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다는 우려에 상품을 미리 구입하려는 이들도 많다. 가공식품 매대에서 만난 주부 B씨는 가격표를 보며 냉동만두를 들었다 놨다 했다. 그는 "1+1 할인 제품이 일반 할인 제품보다 나은지 중량 등을 따져보고 있다"며 "싼 것은 미리 좀 사두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며 "이번 명절은 간소하게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좀 깎아주세요"
인근의 후암시장에서도 고물가의 여파가 느껴졌다. 설 명절이 코앞이지만 '대목'이라는 분위기는 느끼기 힘들었다. 현재 서울 내 전통시장은 오는 24일까지 제수용품과 농수축산물을 5∼30% 할인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하지만 명절 상품을 한아름 구입해 시장을 나서는 이들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상인들은 "물가가 너무 올라서 돈을 아끼는 게 아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전통시장에서도 '알뜰 소비' 움직임이 포착된다. 육류가 대표적이다. 평소 명절 같으면 꽃등심 등 소위 '비싼 부위'의 판매도 늘어난다. 하지만 올해 명절은 그런 특수도 실종됐다. 후암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예전 명절이면 소위 비싼 부위를 미리 사전에 예약해 놓는 손님도 많았는데 올해는 통 없다"며 "오히려 팬데믹 때가 낫다고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나물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채소 골목에선 깎아달라는 흥정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상추와 고추를 깎아 달라는 한 손님의 말에 상인은 "우리도 남는 게 없다"면서도 몇 천원을 깎아주곤 검은 봉지를 손님에게 내밀었다. 실제로 현재 가격이 내려간 나물은 공급량이 증가한 시금치 정도다. 이외 고사리 등은 생산량이 줄면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차례상 물가 '역대 최고'
이날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전통시장(25만4500원)과 대형마트(35만9540원)의 설 차례상 마련 비용은 지난해 대비 각각 4.1%, 2.1% 상승했다. 역대 최고치다. 물론 생산량이 증가한 과일류, 견과류, 채소류 등 농산물 가격은 하락하는 추세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축산물, 과자류와 같은 공산품 가격이 상승을 이끌고 있다. 소비자 체감 물가가 높은 이유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재래시장 기준, 적게는 10%부터 많게는 30%까지 올랐다. △고사리 400g 6000원 △조기 (중국산 부세조기) 3마리 9000원 △다시마 300g 5000원 △소고기(산적용 우둔살A1+) 3만3000원 △닭고기(손질 육계) 6000원 △약과, 유과 5000원 △청주 1만1000원 △식혜 1.5리터 5000원 △밀가루 2.5kg 4500원 △두부 3모 6000원 △식용류 1.8리터 7500원 등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 고물가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후암시장에서 만난 중년 주부 D씨는 "가격이 너무 올라서 설 명절 분위기도 잘 나지 않는다"며 "서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물가인데 정부는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새해에는 좀 나아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여전히 살기가 팍팍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도 설 물가 안정에 부랴부랴 나서는 모습이다. 정부는 올해 배추와 무 사과 등 16대 성수품을 역대 최대 규모(20.8만 톤)로 공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농·축·수산물 할인도 역대 최대 규모(300억 원)로 지원한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설 선물 가액도 한시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오는 27일부터 30일간 기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