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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식품업계 미래라더니…'제자리걸음' 비건푸드

  • 2023.09.27(수) 06:50

식품기업 잇따라 비건 브랜드 론칭
가시적 성과 내는 곳은 많지 않아
'육류 모사' 벗어나 자체 매력 보여야

소비자는 맛을 포기하지 못한다

2주 전의 일입니다. 삼양식품이 지주사의 이름을 '삼양라운드스퀘어'로 바꾸며 앞으로의 비전을 공개하는 행사를 가졌죠. 여러 가지 신사업을 공개했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비건 푸드 시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분은 이 시점에서 '또 비건푸드냐'라고 이야기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 '비건' 안 하는 식품 기업이 있기나 한가요.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비건 제품 안 내놓을 수 없지. 남들 하는 것 다 해야지. 하지만 이날의 발표는 조금 달랐습니다.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이날 발표를 맡은 건 삼양식품의 3세인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CSO)이었는데요. 식물성 단백질 사업을 설명하면서 "식물성 단백질 식품이 처음의 기대보다 각광받지 못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친환경 가치도 중요하지만 맛을 포기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기존 제품을 모사하는 데 급급한 국내 비건식품 시장을 정확히 관통한 발언입니다. 비건식이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고, 탄소 발자국도 줄이고 좋은 건 다 알죠. 하지만 소비자는 맛이 없는 음식을 환경 보호 때문에 구매하지는 않습니다. 전 본부장은 국내 비건 푸드 시장이 이 지점을 간과했다는 걸 지적한 겁니다.

'비건' 없는 곳은 없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 식품 기업들은 잇따라 비건 식품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전문 브랜드를 육성했습니다. 육류를 사용한 식품보다 친환경적이라고 하니 ESG경영에도 부합하고, 얼마나 대체육을 잘 만드느냐에 따라 자사의 R&D 능력까지 자랑할 수 있는 시장이었죠. 

국내 1위 식품 기업 CJ제일제당은 2021년 비건 브랜드 '플랜테이블'을 론칭했습니다. 비건 만두와 김치 등을 내놨죠. 풀무원은 '지구식단'을 선보였습니다. 동원F&B도 '마이플랜트'를 내놨고 신세계푸드도 베러미트, 유아왓유잇 등을 론칭했죠. 웬만한 규모의 식품 기업이라면 비건 브랜드 하나쯤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CJ제일제당의 비건 브랜드 플랜테이블 제품들/사진제공=CJ제일제당

하지만 국내 비건식 시장은 여전히 시작 단계입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국내 대체육 시장 규모가 2025년에 270억원 수준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많아 보이시나요? 새우깡의 매출이 연 1000억 남짓하니 새우깡 3개월치 매출 정도입니다. 내로라할 식품 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하는 시장 치고는 매우 협소하죠.

시장 판도를 바꿀 만한 '스타 제품'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 바닥은 대형 제품 하나가 뜨면 순식간에 시장이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CJ제일제당이 비비고 왕교자를 내놓으니 '프리미엄 만두 시장'이 생겼고 대상이 '안주야'를 내놓으니 HMR안주 시장이 급성장했죠. 하지만 비건 시장엔 아직 그런 '구세주'가 보이지 않습니다.

돌고돌아 '맛'

비건 식품 시장이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건 비건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제품이 비건이라는 걸 강조하다 보니 막상 맛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맛에 대한 유일한 논의는 '얼마나 고기와 비슷한 맛과 식감인지'죠. 이러다보니 진짜 비건을 추구하는 인구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비건 제품은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는 카테고리가 됩니다. 

비건 시장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만을 겨냥해도 시장이 유지될 만큼 비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거죠. 한국채식비건협회에 따르면 국내 비건 인구는 약 200만명이라고 합니다. 이 중 엄격한 비건 인구는 50만명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나뚜루가 선보인 비건 아이스크림/사진제공=롯데웰푸드

두 번째 방법은 비건 제품이 육류의 대체재가 아닌 '또다른' 카테고리로 자리잡는 겁니다. 이걸 가장 잘 해낸 곳이 대체유 시장입니다. 단순히 우유를 비건으로 바꾸는 데서 끝난 게 아니라 오트밀크나 아몬드밀크 자체의 개성있는 맛이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갔죠. 비건이라서가 아니라, 맛있어서 찾는 제품이 된 겁니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대체육은 아직 빈말로라도 '고기 같다'는 말을 쓰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비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개선돼야 합니다. 기업들도 비건 트렌드에 맞춰 '한탕' 하려는 제품들만 내놔선 안 될 겁니다. 

전병우 본부장은 삼양식품의 식물성 단백질 시장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60년 전 존재하지 않았던 라면처럼,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육류 제품의 모사가 아닌, 비건식품을 통해 새로운 카테고리를 열겠다는 포부입니다. 그의 말처럼 될 수 있을까요.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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