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어야 산다
롯데그룹은 창업 이후 몇 차례의 대 변화를 겪어 왔다. 그룹 초창기였던 50~60년대 롯데는 '껌 파는 회사'였다. 롯데껌을 중심으로 초콜릿, 캔디, 아이스크림 등 소소한 먹거리가 롯데의 핵심 사업이었다.
70~80년대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종합식품유통기업'의 기틀을 세웠다. 롯데칠성음료의 전신인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하고 롯데호텔을 세운 것도 이 때다. 국내 최초의 패스트푸드점 '롯데리아'와 롯데쇼핑, 롯데월드도 이 시기에 사업을 개시했다.
2010년대 들어선 롯데케미칼이 국내외 화학 기업들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우면서 화학 부문이 유통업과 함께 그룹 주력 사업으로 떠올랐다. 현재 시가총액으로만 따지면 롯데케미칼이 롯데쇼핑의 2배가 넘는다.
이처럼 몇 차례의 큰 변화를 이어 온 롯데가 최근엔 'AI 그룹'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미래 먹거리로 지목하고 그룹 전체를 'AI화'해야 한다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이른바 '롯데 3.0' 시대를 위한 움직임이다.
신동빈, AI에 빠지다
신 회장은 최근 들어 기회가 생길 때마다 AI를 강조해 왔다. 지난해 7월 VCM(사장단회의)에서는 "AI기술은 과거의 PC, 인터넷, 모바일처럼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며 "단순히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찾고 이를 과감한 실행으로 이어지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업무 전반에 AI 수용성을 높이고 생성형AI 등 다양한 부문에 기술 투자를 강화해 달라"는 주문을 이어갔다. 이어 지난 1월 열린 상반기 VCM에서 다시 한 번 "AI를 단순히 업무 효율화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혁신의 관점에서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겨 달라"고 재차 언급했다.
신 회장이 잇따라 AI 육성을 강조하는 건 그룹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시작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그룹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통군은 쿠팡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화학군도 중국의 자급자족 전략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미래 성장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롯데그룹은 지난해 9월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 산하에 AI 태스크포스를 신설했다. 이어 각 계열사들이 AI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했다. 또 신 회장과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계열사 CEO 등 110여 명을 모아 그룹의 AI 전략 방향을 논의하는 '2024 롯데 AI 콘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롯데표' AI의 모습은
롯데그룹의 'AI 대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그 중심에 있는 건 롯데정보통신이다. 롯데정보통신은 지난 1월 열린 CES 2024에 참가해 롯데의 메타버스 플랫폼 '칼리버스'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전무가 부스에 직접 방문해 칼리버스를 체험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다.
롯데정보통신이 개발한 생성형AI 플랫폼 '아이멤버'도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현재 사내 메뉴얼 등을 업로드해 공유하는 단계지만 조만간 팀 단위 맞춤형 플랫폼을 오픈하고 연내 개인 맞춤형 AI 플랫폼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자체 TF를 구성했던 유통군도 생성형AI추진체 '라일락'을 가동한다. 최근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했다. 롯데쇼핑은 라일락을 광고 제작 자동화, AI 기반 고객 상담 등에 활용하고 AI 기술의 유통사업 연계, 데이터 커머스 추진 등 신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2021년 2월부터 AI 쇼호스트 '루시'를 내세운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인간 쇼호스트 없이 루시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루시 톡 라이브'를 론칭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롯데GRS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패티를 알아서 굽는 로봇 '알파그릴'과 자동 튀김 로봇 '보글봇'을 테스트하고 있고 세븐일레븐은 챗GPT4.0을 기반으로 한 상담용 AI 챗봇을 도입해 경영주들이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컴퓨터가 단순히 계산을 돕는 도구가 아닌, 새로운 일을 창조해 내는 도구가 된 것처럼 AI도 새로운 일을 발굴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며 "그룹 차원에서 AI를 강조하고 빠른 도입을 부추기는 건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