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말이나 말지
"치킨 가격은 약 3만원 정도가 돼야 한다"
지난 2022년 초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말입니다. 당시 BBQ의 간판 메뉴인 '황금올리브치킨(황올치)'의 가격은 1마리에 1만8000원이었습니다. 윤 회장에게는 '적정가'의 절반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으니, 사실상 인상 예고나 다름없었죠. 역시나 발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BBQ는 주요 제품 가격을 2000원씩 올리며 심리적 장벽이었던 '1마리 2만원' 고지를 밟습니다.
심리적 장벽을 하나 넘으면, 다음 장벽을 넘는 건 쉽습니다. 지난 23일 BBQ는 2년 만에 가격 인상에 나섭니다. 이번에는 2022년보다 인상폭을 키워 3000원씩 올리기로 했습니다. 황올치 1마리 가격은 이제 2만3000원입니다. 황올치만큼이나 인기있는 자메이카통다리구이는 2만4000원입니다.
인상폭뿐만 아니라 시기도 앞당겨졌습니다. BBQ의 지난 2022년 가격 인상은 2018년 이후 4년 만의 인상이었죠. 2018년의 인상은 2009년 이후 9년 만의 인상이었습니다. 인상 시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겁니다. 가격을 올려도 매출이 줄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니, 다음 인상에 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란 분석입니다.
사실 BBQ는 지난해에도 '사실상의 가격 인상' 이슈를 한 차례 치렀습니다. BBQ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100%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을 올리브오일 50%, 해바라기씨유 50%의 블렌딩 오일로 바꾸면서입니다. 올리브 오일 가격이 급등해서 내린 결정이라지만 결국 이는 가격 인상 대신 원재료 코스트를 낮추는 '슈링크플레이션'에 해당합니다. 소비자는 같은 가격을 주고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말이나 말지 2
BBQ뿐만 아니라, 가격 인상에 나서는 치킨업계는 거의 동일한 문구로 설명을 시작합니다. 각종 비용과 원재료 가격이 늘어나면서 가맹점들이 가격 인상을 요구했다는 거죠. 그간의 원가 인상 부담을 본사가 감내하고 있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덧붙일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BBQ는 "배달앱 중개 수수료 및 배달비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패밀리들의 제품 가격인상 요구가 꾸준히 있어 왔다"며 "소스류의 경우, 본사의 매입가가 40%나 오른 가격에 공급을 받는 등 최근 5개월 간 150억원가량의 비용을 본사에서 전액 감수해왔다"고 인상 이유를 밝혔습니다. 가격 인상은 오로지 가맹점을 위한 것이란 설명이었죠.
하지만 가격 인상 1주일 만에 신선육과 올리브오일, 치킨무 등 가맹점에 공급하는 50여 종의 원부재료 가격을 올리면서 이같은 발언도 공허해졌습니다. 가맹점주들의 수익성을 위해 가격을 올렸다더니, 곧바로 공급가를 올리면서 본사의 이익 개선에 나선 겁니다.
제너시스BBQ의 연간 실적 추이(개별 기준)를 봐도 본사가 비용 부담을 모두 감내하고 있다는 설명에는 물음표가 붙습니다. 지난해 BBQ는 매출 4732억원, 영업이익 554억원을 벌어들이며 영업이익률 11.7%를 기록했습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3%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13.6% 감소하며 이익률은 3.6%포인트 줄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면 '부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BBQ가 가격 인상을 단행했던 2022년에는 영업이익률이 15.3%에 달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2021년의 영업이익률은 무려 16%를 웃돌았죠.
코로나19와 인건비 폭등, 물류비 폭등, 올리브유 가격 급등 등의 이슈가 생기기 전과 비교해 볼까요. 2019년 영업이익은 10.6%, 2018년과 2017년은 각각 8.6%, 8.1%입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BBQ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9%였습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의 평균 이익률은 14.8%입니다. 지금 제너시스BBQ는 1995년 창립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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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Q가 가격 인상을 발표한 다음날엔 작은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23일부터 오른 가격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던 BBQ가 갑자기 가격 인상 시기를 오는 31일로 미루겠다고 한 겁니다. "물가 안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게 BBQ 측의 설명이었는데요.
반응은 싸늘했죠. 가격 인상 시기를 1주일 미루는 게 물가 안정에 어떻게 보탬이 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주일이면 한 가정이 치킨을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시간인데요. 오르기 전에 한 번 먹고 3000원을 아끼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까요?
일각에서는 일주일 간 유예를 줘 가격 인상 후에도 인상 전 가격으로 주문할 수 있는 기프티콘 판매를 늘리려는 계산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가격 인상이 예고된 만큼 BBQ 치킨을 즐기던 사람들이라면 미리 쿠폰을 구매해 둘 것이라는 거죠.
어쨌든 가격 인상은 결정됐고 소비자들은 2만3000원 치킨에 적응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머지않아 윤홍근 회장이 바라던 '3만원 치킨 시대'가 다가오겠죠. 그 때가 되면 치킨업계의 릴레이 가격 인상이 멈출까요? 아니면 또 누군가가 새로운 '치킨의 적정 가격'을 제시할까요. 답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