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격변의 시기였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의 영향력과 티몬·위메프를 전개해 온 큐텐의 몰락이 생태계를 크게 흔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도 쿠팡은 공고한 성장세를 만들어냈다.스쳐 가는 바람인 줄 알았더니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로 대표되는 중국 이커머스는 올해 국내 시장에 빠른 속도로 안착했다. 판매 제품에서 각종 유해물질이 검출되는가 하면 고객의 개인정보를 부당하게 수집하는 등 논란이 잇따르는 와중에도 신속한 배송과 저가 구매를 우선시하는 소비층이 늘어나면서 성장에 탄력을 받았다.
이 중에서도 알리는 올해 월간 사용자 수 1000만명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알리의 애플리케이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968만명으로 집계됐다. 현실화가 된다면 쿠팡에 이은 두 번째다.
알리가 쿠팡과 격차를 점차 줄이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알리의 MAU는 1위인 쿠팡(3219만명)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지만, 쿠팡의 성장률이 전월 대비 0.5%에 그칠 동안 알리는 6.9% 늘었다. 이미 대부분 소비자가 사용하고 있는 쿠팡과 비교하면 알리의 성장 기회 요소가 더 많은 셈이다.
테무도 주요 쇼핑몰 앱에서 한자리를 꿰차고 있다. 같은 기간 테무의 MAU는 733만명으로 4위를 기록했다. 한 달만에 이용자 수를 54만명(7.9%) 가까이 늘리며 3위인 11번가(889만명)를 쫓았다. G마켓(562만명)과 GS샵(362만명), CJ온스타일(283만명) 등 토종 이커머스들을 제치고 중국계 비중을 늘려나가는 데 힘을 보탰다.
미정산의 악몽
C커머스의 공습과 함께 빠질 수 없는 올해 유통가 최대 이슈는 큐텐발(發)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다. G마켓 창업자인 구영배 큐텐 대표가 짧은 기간에 무리한 인수합병(M&A)에 나서며 몸집 불리기에 급급했던 게 결국 대참사를 일으켰다.
당시 티메프는 긴 정산 주기를 이용해 이른바 '돌려막기'식 운영을 지속해 왔다. 티몬은 거래가 발생한 달의 말일을 기준으로 40일 후에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했고, 위메프는 거래가 발생한 달의 익익월 7일에 정산했다. 판매자로선 거래 후 돈을 받을 때까지 40~70일가량이 소요됐다.
특히 현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티메프는 대금 지급일이 다가오면 상품권을 소비자들에게 약 10% 할인된 가격에 팔아 판매 대금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상품권을 판매한 돈보다 상품권 업체에 지급해야 할 정산 대금이 더 커지는 등 팔수록 손실이 누적됐고, 정산기일이 줄줄이 밀리자 지난 7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티메프 사태가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났음에도 피해 복구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티메프는 기업 매각을 통한 변제를 목표로 인수 대상자 물색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업황 부진에 탄핵 정국까지 겹치면서 새 주인 찾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영업 재개에 필요한 전자결제대행사(PG사)와 카드사 합류도 언제 이뤄질 지 알 수 없다.
쿠팡만 신났다
전반적으로 뒤숭숭한 업황에도 쿠팡은 굳건했다. 당초 쿠팡이 지난 4월 유료 멤버십 '와우클럽'의 월회비를 기존보다 3000원 가까이 인상하기로 하면서 이른바 '탈팡족'이 늘어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인상된 가격이 기존 멤버십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시점인 8월부터는 이탈이 가속화된다는 게 업계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용자 수는 증가했다. 올해 3분기 기준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분 활성 고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증가한 2250만명으로 집계됐다. 1인당 매출은 40만원에서 43만원으로 7.5% 늘었다. 무료배송과 익일 새벽 배송은 물론 쿠팡플레이와 쿠팡이츠 등으로 이어지는 '락인' 효과가 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실적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쿠팡의 올 3분기 매출은 78만6600만달러(약 10조69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2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9% 늘어난 1억900만달러(약 1481억원)를 기록했다. 매출은 사상 첫 40조원 돌파, 영업이익은 2년 연속 연간 흑자가 유력하다. 사실상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라이벌이 없다. 네이버쇼핑 정도가 최후의 경쟁자가 될 전망이다.
쿠팡이 영향력을 공고히 할 동안 이커머스 업체 대부분의 위기감은 커졌다. 11번가는 지난 3월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9월에는 본사 사옥을 기존 서울스퀘어에서 광명 유플래닛 타워로 이전하며 비용 감축에 나섰다.
롯데쇼핑의 이커머스 플랫폼 롯데온은 올해만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신세계그룹의 SSG닷컴과 G마켓 역시 하반기 들어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성장이 아닌 '생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