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과 하나금융그룹이 정면 충돌할 태세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저축은행 부당지원으로 중징계를 받고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가면서다.
그러면서 키를 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금융권에선 과거 금융당국과 맞서 이긴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김 회장이 결국 김 행장 카드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김 회장과 동명이인으로, 임기를 한 달여 남겨두고 중징계를 받아 연임에 실패한 고(故)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사례도 새삼 거론되고 있다. 김 회장 역시 내년 초 연임을 시도하게 된다.
◇ 김종준 하나은행장, 중징계에도 버티기
금감원은 22일 김종준 하나은행장에 대한 제재내용을 금감원 홈페이지에 조기에 게재했다. 특정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제재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감원은 “김 행장이 저축은행 부당지원으로 중징계를 받고도 자신은 떳떳하다고 공식적으로 반발하는 데 따른 대응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제재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해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금융권에선 김 행장이 버티기에 들어가자 금감원이 실력 행사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는다. 실제로 과거 중징계를 받은 CEO들은 자의든 타의든 대부분 옷을 벗었다. 현실적으로 CEO직을 수행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중징계를 내리는 금감원의 속내도 그랬다.
김 행장은 하나캐피탈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1년 미래저축은행에 대한 부당지원을 주도해 60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퇴임 후 3년간 재취업을 금지하는 문책경고를 받았다. 반면 김 행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당시 저축은행 투자 건은 정상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진 조치였다. 내년 3월 임기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겠다”고 반박했다.
◇ 김승유 전 회장에 대한 예우 차원?
하나금융은 김 행장을 내년 3월까지 끌고 가기로 한 이유에 대해 경영 공백과 혼선을 줄여 조직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선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에 대한 예우 차원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 행장이 바로 물러나면 스스로 부당지원 사실을 인정한 셈이 되고, 그러면 김 전 회장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저축은행 부당지원을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 전 회장은 김 행장보다 한 단계 낮은 징계를 받았다.
실제로 하나금융 내부에선 이번 징계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 4대 천왕으로 꼽혔던 김 전 회장을 망신주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 부당지원 건에 대해 수차례 검사를 실시했지만 확실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김 행장을 대신 징계하면서 김 전 회장도 함께 끌고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관치금융 논란도 재차 불거지고 있다. 문책경고는 퇴임 후 재취업만 금지하고 있는데도 당장 퇴진을 압박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그림자 규제를 없애겠다는 신제윤 금융위원장과의 발언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선택은
반면 하나금융이 계속 버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김 행장의 거취를 두고 금감원과 하나금융의 대립 구도가 만들어진 이상 금감원도 물러설 여지가 크지 않아서다. 금감원은 이미 CEO 리스크가 하나은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강도 모니터링에 나설 태세다.
하나금융 차원에서도 금감원의 눈치를 봐야할 사안이 많다. 실제로 하나은행은 KT ENS 협력업체의 대출 사기와 관련해 내부직원 연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외환카드와 하나SK카드의 합병 역시 당국이 키를 쥐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태 현 회장의 입지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과거 금융당국과 맞섰다고 멀쩡하게 금융권을 떠난 사례는 거의 없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등이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하긴 했지만 이미 현직을 떠난 뒤였다. 대표 강골로 꼽히던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당국과 사사건건 대립하다가 결국 임기를 한 달여 앞두고 중징계를 받으면서 쓸쓸하게 금융권을 떠나야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김정태 회장의 판단이 중요하다”면서 “금감원을 무시하면서 내년 초 임기가 끝나는 김 행장 카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긴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