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을 위한 노사대화가 중단된 지 두 달이 넘었다. 법원의 합병절차 중단에 대한 가처분신청 인용과 금융위원장 교체, 그리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노사합의 강조 등으로 은행 조기통합은 더 멀어지는 분위기다.
게다가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부산은행 발언'은 외환은행 직원들의 마음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최근 하나금융이 가처분신청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을 법원에 냈지만, 현 상태에서 김정태 회장은 여전히 딜레마 빠져 있다. 조기통합도 어렵고, 그렇다고 5년간의 독립경영 약속을 지키는 것도 힘들다.
◇ 법원 결정 이은 금융위원장 교체 악재
지난 1월 19일 하나금융이 금융위원회에 하나-외환은행 합병 예비인가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노사 대화는 중단됐다. 엄밀히 따지면 1월 16일 협상이 마지막 노사대화였다.
현재 양쪽 모두 대화 의지가 없어 보인다. 하나금융은 노사대화보단 법원의 결정과 금융위의 입장 변화에 더 주목하고 있다. 외환 노조도 법원에서 오는 6월 말까지 통합절차를 중단하라고 한 이상 굳이 먼저 협상에 나설 이유가 없다.
법원 판결이 결정적이었지만 이후 금융위원회의 변심(?)과 위원장 교체는 조기통합에 대한 김 회장의 입지를 더욱 좁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청문회 당시 하나-외환은행 조기 통합과 관련해 "노사 양측 합의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노사합의가 전제조건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임 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금융개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계부채 등 거시경제 이슈도 산적해 있다. 하나-외환 합병 건은 우선순위에서도 완전히 밀렸다. 전임 신제윤 위원장이 지난 연말 이후 말 바꾸기에 나서면서 하나금융의 예비인가 신청을 받아들였던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 "부산은행 역전" 발언 논란, 외환 민심 싸늘
김 회장은 지난해 이후 조기통합을 준비하면서 외환은행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도 사실상 실패했다. 지난달 김 회장의 '부산은행 역전' 발언 이후 외환은행 직원 상당수의 마음이 돌아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월 김병호 하나은행장 취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환은행이 부산은행보다 직원이나 자산 규모가 훨씬 큰데도 이익이 안 나고 있다"고 작심한듯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실적이 안 좋은 건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경영하던 10년 동안 투자를 안 해서이지 직원들이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면서도 "앞으로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부산은행에도 역전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외환은행에 정통한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김 회장의 부산은행 발언 이후 외환은행 직원들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노조와 상관없이 일반 직원들의 마음이 (하나금융에서) 돌아섰다"고 전했다. 김정태 회장이 최근의 실적악화를 론스타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신뢰를 잃게 한 이유로 꼽힌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외환은행 직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또 "외환은행이라는 조직이 무너지고 있다"며 "5년간 합병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주든지, 아니면 노사합의를 이끌어내든지 해야 하는데 하나금융은 둘 다 못하겠다는 심산이어서 문제"라고 꼬집었다.
외환은행 당기순이익은 지난 2012년 2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이후 급격히 악화했다. 외환 노조는 이를 김정태 회장의 경영실패라고 주장한다. 반면 하나금융에선 2010년 2011년 이익이 많았던 것은 각각 SK하이닉스, 현대건설 매각이익 등의 일회성 요인이 컸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당시 외환은행 대주주였던 론스타가 매각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금융권은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하나금융이 최근 1년간 조기통합에 초점을 맞추면서 외환은행이 영업 동력을 잃고 리더십도 흔들렸던 것으로 보고 있다.
◇ 김정태 회장 조기통합 숨 고르기?
현재 노조나 김정태 회장 모두 대화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나금융은 법원의 가처분신청 결과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에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오는 4월 말 정도에나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의신청이 기각되면 항고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원이 기존 판단을 뒤집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만약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거나 조기통합 절차 중단 시한인 오는 6월 이후 상황이 바뀐다고 해도 임종룡 위원장의 입장은 여전히 변수다. 임 위원장은 이미 노사합의를 강조한 바 있고, 현재 금융개혁에 모든 동력을 쏟아붓고 있다. 가계부채 등 거시경제 이슈도 산적해 있어 하나-외환은행 합병에 대한 관심도나 우선순위는 뒤로 밀려나 있다.
하나금융 일각에선 올해 조기통합은 힘들다고 판단, 내년 초를 목표로 재추진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