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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분신 윤종규, 잃어버린 10년 되찾는다

  • 2015.09.17(목) 10:20

[대우증권 빅매치에 얽힌 사람들]②
김정태 전 행장 수업받은 윤 회장, M&A 시계 다시 돌린다
시험대 오른 대우증권 M&A, 새 비전 따른 M&A 전략도 관심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KB 사태 직후,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취임하면서다. 동시에 떠오른 인물은 고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다. 김 전 행장이 국민은행을 떠난 게 2004년. 당시 부행장이었던 윤종규 회장도 함께 국민은행을 떠났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KB 사태라는 험난한 시간을 겪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바뀌어 몸살을 앓았던 KB 관계자로부터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지난 10년간 국민은행은 확고해 보였던 리딩뱅크 지위를 잃었다. 해외진출과 인수합병(M&A) 시계는 아예 멈춰버렸다. 윤종규 회장 취임 후 가까스로 LIG손보 인수에 성공해 그나마 M&A의 흑역사엔 종지부를 찍고 분위기를 전환했다. 시너지 확대 부문에선 여전히 논란이 많은 M&A여서 좀 더 두고 볼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전히 내세울 만한 M&A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최근 대우증권 매각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KB 내부에선 10년 전에 꺼졌던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도 나온다. 동시에 윤 회장의 리더십은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 고 김정태 행장으로부터 경영 수업받은 윤 회장 

윤 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큰 이유 중 하나는 고 김정태 행장과 함께 당시 잘나갔던 국민은행을 이끌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2002년 삼일회계법인 부대표였던 윤 회장을 알아본 것은 김정태 전 행장이었다. 당시 삼일회계법인은 국민은행의 외부 회계감사기관이었다.

김 전 행장의 삼고초려로 윤 회장은 국민은행 경영진으로 첫발을 디뎠다. 처음엔 그의 전공분야인 재무전략본부 부행장(CFO, CSO)이었고, 이후 개인금융그룹 부행장 자리를 맡겼다.

당시 말단 행원으로 윤 회장을 지켜봤던 국민은행 한 관계자는 "교차 발령을 통해 사실상 후계수업을 했던 것"이라며 "당시 윤 회장은 개인금융그룹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냈었다"고 말했다. 전략, 재무뿐 아니라 영업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던 셈이다. 당시 윤 회장을 두고 김 전 행장의 분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서로 간의 신뢰도 남달랐다. 

직원들의 신망도 깊었다. 사실 윤 회장이 KB에 있었던 것은 KB금융지주 부사장 시절까지 포함해 고작 4~5년에 불과하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이 기자간담회에서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당시 국민은행 노조는) 2년만 일해도 은행 출신이라고 인정해주는데 나는 10여 년 됐는데 노조에서 농성을 하더라"며 우스갯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 KB 직원 스스로 KB 출신이라고 인정한 데에는 그만큼 KB에 대한 이해가 높고 또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일 터.

◇ 윤 회장 "10년 전 우리는…"

윤 회장은 지난해 11월 취임사에서 '10년 전' 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썼다. 그만큼 10년 전의 KB를 기억하고, 그때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취임사 서두에서 "10년 전 우리의 눈은 국내를 넘어 아시아를 향했다"고 언급했고, 이어 리딩금융그룹 회복을 말하면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1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대한민국 금융을 선도했다"고도 강조했다.

실제 국민·주택 합병 이후 리딩뱅크라는 키워드를 맨 처음 제시한 것도 김정태 전 행장이고, 이후 아시아 진출이라는 화두를 제시했던 것도 김 전 행장 때였다.

 

인도 태국 인도네사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홍콩 일본 중국 등으로 이어지는 팬 아시아((Pan-Asia)전략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해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두 곳의 은행을 추가로 인수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곤 2003년 인도네시아 4위 은행인 뱅크인터네셔널 인도네시아(BII) 지분을 인수했다. 윤 회장이 이를 주도했다.

착착 진행되나 싶었던 KB의 팬 아시아 전략은 2004년 김정태 전 행장이 감독 당국의 징계로 물러나고 강정원 전 행장이 취임하면서 사실상 폐지됐다.

 

▲ 지난해 11월 윤종규 회장 취임식



◇ 멈춰버린 KB의 M&A 시계

이후 지난 10년간 KB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강정원 전 행장 땐 인도네시아 BII은행(2008년)을 팔았다. 윤 회장은 "BII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 괜찮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곤 강 전 행장이 인수한 것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2008년)이었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이후 6년간 1조 원에 가까운 투자손실을 봤다. 이는 국민은행의 해외진출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다.

국내 M&A에서도 마찬가지다. 강 전 행장 때 외환은행 인수 본계약까지 체결(2006년)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시절엔 ING생명 인수를 추진했으나 이사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임영록 전 회장은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후 가까스로 성공한 게 LIG손보(현 KB손보) 인수였다.

이렇게 KB가 지난 10년간 멈춰있는 사이 경쟁금융지주사들은 M&A를 통해 은행 혹은 비은행 사업을 차근차근 확대해왔다. 신한지주는 LG카드(현 신한카드)를 인수했고, 하나금융은 대투증권(현 하나투자증권)에 이어 외환은행까지 인수했다.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그 결실도 보고 있다.

반면 KB는 리딩뱅크 지위를 잃었고, 비은행도 강화하지 못했다. 10년 전 모습 그대로이거나 후퇴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 사부와는 다른 리더십…M&A에선?

이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을 윤 회장이 되찾아 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나는 리딩뱅크 회복이고, 하나는 끊어진 M&A 역사다. 윤 회장도 취임 당시 리딩뱅크 회복 다음으로 중요한 것으로 비은행 강화를 꼽았다. 대우증권 인수전 참여는 당연한 순서로 보이기까지 한다. 어쩌면 대우증권 M&A는 윤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

김정태 전 행장의 수제자이지만 그와는 성향이나 리더십에서 전혀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 카리스마보다는 부드러운 리더십에 가깝다. 증권가에 오래 몸담았던 김 전 행장과 달리 뱅커에 가깝다. 실무에 능통하고 치밀하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거의 모르는 게 없는 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 전 행장과 윤 회장을 모두 겪었던 감독 당국 전 고위관계자는 "김 전 행장이 과거 국민·주택 합병을 이뤄낸 것은 당시의 정치적 배경도 무시 못 할 요인이었다"며 "지금의 윤 회장은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 아니냐"는 묘한 뉘앙스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 10년 전 김 전 행장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은행의 공적인 기능보단 주주 가치 우선을 강조하면서 감독당국과 부딪히는 일도 잦았다. 결국, 이 점 때문에 김 전 행장은 당국의 징계를 받고 물러나야 했다. 김 전 행장이 모든 것을 잘한 것도 아니고, 당시에 요구했던 리더십과 지금의 리더십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윤 회장 취임 1년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리딩뱅크 회복이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하느라 분주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비전과 전략이 필요한 때라는 점이다. 대우증권 M&A 역시 그러한 큰 그림이 있어야 첫 테이프를 끊든 말든 할 수 있는 문제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김정태 전 행장의 수제자가 아닌 새 리더십으로 무장한 윤 회장만의 색깔을 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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