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히든카드는 뭘까.
40년 넘는 금융경력에 은행과 증권을 두루 거친 이동걸 회장이지만 여러 논란과 우려 속에서 지난 12일 취임했다. 취임 일주일 만인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기업 구조조정 경험이 없다는 세간의 우려를 의식한 탓인지, 과감하고 속도감 있는 구조조정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인사말을 통해 (보은인사) 오해를 풀고 싶다고도 했다.
◇ 첫 숙제 '현대상선' 과감한 채무조정 촉구
실제 민간 금융회사에서 일하며 정책금융과 기업 구조조정 경험이 없는 점는 산업은행과 시장 안팍의 우려를 낳았다. 일각에서는 70세(48년생)를 바라보는 그의 나이가 오히려 강점이 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기대감도 내비친다. 더이상 훗일(?)을 도모할 필요가 없으니 정치권이나 이해관계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강단 있게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이동걸 회장은 이날 정상화 여부와 자구노력이라는 구조조정의 두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하면서 "구조조정이 너무 느슨하게, 혹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존중한 나머지 시간을 끌어서 실기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데드라인을 정해야 하고, 무작정 끌려가는 구조조정은 안된다"고도 덧붙였다.
현대상선과 관련해선 현대증권 매각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현대상선의 채무조정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용선료 인하와 함께 1조 8000억 원의 선박금융에 대한 원리금 상환유예, 공모채 8000억 원 등의 채무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현대상선이) 견디지 못한다"며 "이해당사자들을 불러서, 된다는 전제 하에 목숨 건 협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우조선에 대해선 "다행스러운 점은 지원액 4조 3000억 원 중 2조 4000억 정도는 집행하지 않고 있는데 연말 자금 수급을 볼 때 크게 다시 손 벌릴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도 말했다.
▲ 이동걸 신임 산업은행 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 친화력·글로벌 분야 경험 산은에서도?
이 회장은 친화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된다. 은행 출신이지만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 사장을 지내며 내부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웠고, 당시 글로벌 투자 부문에서의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이런 강점이 산은에서도 발휘될 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실제 이 회장은 글로벌 사업 강화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불태우기도 했다. "산은이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마찰적인 측면이 있지만 우리의 적자는 세금유출과도 같다"며 "기본적으로 우리가 먹고 살 것은 벌어야하고, 최소한 적자의 울타리에 있어선 안된다"고도 말했다.
해법으로 '글로벌 사업' 강화를 꼽았다. 그는 "원전이든 고속철이든 중국이 국제 경쟁에서 완승을 하고 있는데 우리도 늦었지만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글로벌 사업을 하는 기관과 함께 해외 프로젝트에서 승자가 될 수 있는 백그라운드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며 "이기는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경제가 선순환될 수 있는 불씨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내부 혁신도 강조.."금융 갑질 사라져야"
이 회장은 임명장을 받은 직후 "노조 이전에 내 자식들인데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자신을 반대했던 노조와 만났다. 그는 "두 차례 4~5시간에 걸쳐 노조와 대화를 했고, 노조는 '낙하산 인사 반대'를 접고 신임 회장을 인정했고, 노조 간부들이 회장 취임식에 참석한 전례가 없었지만 취임식에도 참석했다"고 말했다.
성과주의 도입과 관련해선 사견임을 전제로 "평가 시스템을 면밀히 살펴보고 산은처럼 우수하고 역량 있는 직원은 자기 성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이동걸 회장은 산은 내부의 변화도 촉구했다. "내부적으론 회장, 그건 안됩니다,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며 "제반 상황을 볼 때 산은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적당히 보름, 한달 넘어가는 그런 의사결정은 안된다"며 "명쾌한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금융의 갑질도 사라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 보은인사라고? "1~2년 뒤에 판단"
박근혜 정부의 보은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국책기관인 산업은행이 풀어야 할 여러 과제를 미뤄봐서 보은 인사를 하기엔 이 자리의 무게감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은행, 캐피탈, 증권사 등에서 근무했고, 보험을 제외하고 전 부문에서 일한 경력 등을 볼 때 보은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1~2년 뒤에 여러분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