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인수가격 1조2500억원. 이 가격은 KB금융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발표 이후 예상했던 '1조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금액이다.
KB금융지주는 '승자의 재앙'까지는 아니라도 한동안 비싸게 주고 샀다는 논란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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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가매수 논란은 불가피
KB금융은 12일 이사회를 열고 현대증권 지분 22.56%(5338만410주)를 1조2500억원에 인수하는 안을 의결하고 이같은 내용을 공시했다. 최종 인수가격은 정밀실사 등을 거쳐 오는 5월31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가격 조정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큰 폭의 조정은 힘들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이번 인수가격은 지난해 현대상선이 오릭스PE와 체결했던 매매계약 약 6500억원의 두배 가까이 되는 금액이다. 그때와 비교해 기업가치가 크게 오를 일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경제적인 논리로는 설명하기 힘든 가격이다.
현대증권 매각 대상 지분 22.6%의 가격을 현 시세인 6580원(11일 종가 기준)으로 따지면 약 3512억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만 8988억원으로 무려 256%에 달한다. 주당 인수 가격도 2만3416원에 이른다.
이보다 매각 대상 지분율이 훨씬 높았던 우리투자증권(37.9%)은 9467억원에 팔렸다. 주당 인수가격도 1만2552원이다. 역시 고가매수 논란이 일었던 대우증권도 지분 43%를 2조3205원에 팔았는데 주당인수가는 현대증권보다 낮은 1만6519원이다.
우투증권과 대우증권 인수전에 모두 참여했다 고배를 마셨던 KB금융으로선 비싼 수업료를 내고 증권사를 품에 안게 된 셈이다. 금융지주회사법상 상장사 주식취득요건(30%)을 맞추기 위해 추가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희석된다고 해도 고가 매수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M&A에 정통한 금융권 한 관계자는 "나중에 합병 비율을 따져봐도 한국금융지주의 경우 한투증권의 덩치가 엇비슷하기 때문에 합병비율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 버퍼가 있어 1조를 쓸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KB금융은 KB투자증권이 워낙 덩치가 작아서 합병증권사 지분율이 뚝 떨어질 수 있다"며 "이러저런 상황을 감안해도 1조 이상 쓰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 논란 벗어던지려면 수익 극대화로 1등 탈환
게다가 현대증권은 오랫동안 매물로 나와 있어 인력 등 유무형의 누수가 많았던 점 역시 고가매수 논란에 불을 지핀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한국형 BoA메릴린치, 유니버셜뱅킹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들고 나온 점 역시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KB금융의 선택지는 한 가지다. 하루빨리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의 합병 등을 통해 통합 증권사를 본궤도에 올리고, 은행-증권간 시너지와 사업다각화를 본격화하는 것만이 이런 논란을 사그라들게 하는 방법이다.
KB금융 관계자도 "이번 인수가격은 22.6%에 대한 프리미엄만을 고려한 게 아니라 은행-증권 결합을 통한 차별화된 서비스 창출과 시너지효과까지 고려한 KB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말했다.
KB금융의 지난해 순익은 1조6983억원이다. 2조 3722억의 순익을 낸 신한금융지주와는 7000억원 가까이 벌어졌다. KB금융은 은행뿐 아니라 카드 증권 등 비은행 계열사도 신한에 뒤쳐진다. 이제 현대증권 인수를 계기로 겨뤄볼 만한 체제를 갖췄다. 신한과의 격차를 좁히고 1등 금융그룹에 올라야 1조2500억원이 아깝지 않은 돈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