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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구조조정]⑤생즉사 사즉생

  • 2016.04.21(목) 10:00

'생즉사' 길 걸었던 기업…정부가 키운 '대마불사' 관성 탓
불어난 충당금 부담, 체력약한 은행들 구조조정에 소극적

4.13 총선이 끝나자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지난 10년간 단한번도 제대로된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던 우리 경제가 내년 대선 정국 이전 마지막 골든타임을 맞았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우리 경제와 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 현대상선 등 조선·해운업이 그 첫번째 시험대다. 정치 이슈를 벗어던지고 순수한 경제 논리로 과감한 구조조정을 이뤄낼지 짚어본다.[편집자]

 

 

#'생즉사 사즉생'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현대상선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이 좀더 과감한 결단 내리지 않으면 어렵다. 이해당사자들을 불러서 된다는 전제하에 목숨건 협상을 해야한다."


하나는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말이고, 또 하나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취임 기자간담회 발언이다. 현재 진행중인 현대상선 구조조정을 포함해 기업 구조조정에 임하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업 구조조정을 대하는 정부의 '살고자'하는 태도가 결국 기업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안이함을 키웠고 기업 구조조정을 늘어지게 만들었다.


◇ 절박함 덜한 기업·이해당사자…정부가 키운 관성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기업이든 그 기업을 둘러싼 이해당사자이든 구조조정에 대한 절박함이 덜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콕 찍어서 가장 위험해보인다고 했던 현대상선만 해도 그렇다. 이번에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는데도 사채권자들은 지난달 현대상선 회사채에 대한 채무유예 안을 합의해주지 않았다. 결국 연체됐다.

 
용선료 인하 협상중인 해외 선주사도 오히려 과감한 결정을 내리면 자율협약 등이 순조로울 수 있는데 자기 살길만 찾고 있는 분위기다. 사채권자나 해외선주사나 채권은행이 먼저 행동해주기를 원했다. 주요 이해당사자들이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채권은행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자율협약을 시행한 것도 이런 이유다.

 

자율협약만 들어가면 뭔가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인 안을 기대하는 분위기까지 감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상선에 대한 실사보고서가 좀 나와줘야 (용선료 인하 협상) 가닥이 잡힐 것 같다"며 "각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다른 쪽이 먼져 돼야 가능하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정부와 정치권이 만들어낸 관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마불사'는 늘 지켜져왔다. 현대상선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그렇고, 대우조선해양이나 STX조선 구조조정도 결국 그런 이유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지원이 이뤄졌다. 정치권이 압박하고 정부와 채권은행이 나서서 해결해줬던 게 그동안의 구조조정 방식이었다.

◇ 충당금 부담에 몸사리는 채권단…구조조정에 소극적

 



몸을 사리기는 채권은행도 마찬가지다. 채권은행들은 지난해말까지 현대상선 채권을 여신건전성 분류상 '정상'으로 분류했다가 자율협약을 추진하면서 '요주의'나 '고정이하'로 떨어뜨렸다. 충당금 부담이 커졌다. 은행들은 대출을 떼일 것에 대비해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해 충당금을 쌓는다. 당장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은 회수의문이나 추정손실로 떨어지고, 충당금도 더 많이 쌓아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쌓아야 하는 충당금이 현대상선 여신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행중인 대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따라 구조조정 대상이 확대되는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은행권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다. 가뜩이나 은행권의 수익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형편이다.

특히 농협은행의 경우 지난해말 기업여신에 대한 충당금적립비율은 58%에 불과했다. 최악의 경우 대출해준 기업이 망하면 충당금으로 절반 수준밖에 충당을 못하기 때문에 은행이 휘청일 수 있다. 농협 한 관계자는 "우리도 다른 은행처럼 구조조정 기업에서 손 털고 나오고 싶다"면서도 "당장 손실을 인식해야 하는 부담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4분기엔 STX조선해양 구조조정에 따른 추가 충당금 적립으로 2550억원 분기적자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체력(수익력·자본력)이 약해진 은행일수록 기업 구조조정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신규지원을 해주는 것도 싫지만, 어떻게든 연명해 나가길 바라는 이중적인 속내다.

 

이런 마음이 책임지기 싫어하는 정부와 포퓰리즘밖에 생각하지 않는 정치권, 그리고 이들에 기대는 기업과 이해당사자들과 맞닿아있다. '생즉사'의 길이다. 답은 나와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갑작스런 구조조정 발언에 금융당국 등 다른 부처에선 오히려 "원론적인 수준"이라며 깎아내리는 분위기다.

 

의도가 뭐든 유 부총리가 다시 꺼내든 기업 구조조정 카드에 '사즉생'을 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다행인 점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에서도 기업 구조조정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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