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성과주의 확산이 금융권에선 시간이 갈수록 더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관계 기관 수장들이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제대로 된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임 위원장이 국책은행 자본확충과 성과주의 도입을 연계하면서 또 다른 무리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임종룡(맨 왼쪽) 금융위원장이 1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금융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3차 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
◇ 민간 금융사 '성과주의 확산'은 먼 이야기
임 위원장은 올해 금융개혁의 최대 과제로 성과주의를 도입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정부가 인사·예산권을 쥐고 있는 금융공공기관에 먼저 도입한 뒤, 민간 금융사들로 점차 확산하는 게 애초의 구상이었다.
임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성과주의 문화 확산 방안을 발표하면서 "9개 금융공공기관은 보다 강화된 성과연봉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은행 등 민간 금융권에 모범사례로 작용해 성과 중심 문화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융권 성과주의 확산의 첫 단계인 공공기관부터 꽉 막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예탁결제원,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주택금융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9개 금융공공기관 중 예금보험공사만 겨우 도입했을 뿐이다.
금융사의 한 관계자는 "이미 공공기관 성과주의 도입부터 막혀 있는데, 민간 금융사까지 확산한다는 계획은 아직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 압박 vs 반발…갈등만 커지는 성과주의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무조건 밀어붙이면 된다는 금융당국의 안일한 인식 탓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일단 금융공공기관에 성과주의를 도입하기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9개 기관 중 7개 공기업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소속이어서 개별 협상을 시작하는 것부터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7개 공기업은 협상도 하기 전에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했다. 관련기사 ☞ 금융공기업, 사용자협 탈퇴 초강수…자충수 될 수도
이후 상황이 악화하는데도 임 위원장은 지속해 금융공기업 수장들을 압박하기만 했다. 성과연봉제를 먼저 도입하는 기관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강조하던 임 위원장은 이제 뒤처진 기관에 불이익을 주겠다며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는 10일 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이 지연되는 기관에 대해서는 그 정도에 따라 인건비와 경상경비를 동결·삭감하는 등 불이익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압박의 강도를 높이자 금융노조는 더 반발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10일 기자회견을 열었고, 11일엔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에 돌입하기로 했다. 오는 19일엔 국회에서 토론회도 열 계획이다. 노조 측은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지난 총선에서 몸집이 커진 야권과 공조할 방침이다. 관련기사 ☞ 멀어지는 금융 성과주의...금융위의 자충수?
◇ "국책은행 자본확충 전제, '성과주의 도입'"
이런 와중에 임 위원장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전제가 성과주의 도입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선 부실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국책은행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를 성과주의 도입과 연계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이 '시급하다'며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까지 거론해왔는데, 만약 국책은행에 성과주의 도입을 하지 못한 채 자본확충이 이뤄지면 비판 여론만 키우는 셈이 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물론 국책은행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 '난제'를 엮어서 좋을 게 뭔지 모르겠다"며 "게다가 국책은행 부실 책임은 정부에도 일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