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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뒤바뀐 하나은행 '현대중공업 읍소' 통할까

  • 2016.07.13(수) 16:20

'자칫 독박쓸라' RG발급 동참 시중은행에 협조 요청
취약업종 익스포져 꺼리는 은행 사이에서 묘안 시급

현대중공업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이 13일 오후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혹은 부서장)을 불러 모았다.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다.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여신 담당 임원을 소집해 여신 회수 자제 등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요즘들어 시중은행이 이런 회의를 주관하는 일은 흔치 않다. 현대중공업이 최근 수주를 해 놓고도 시중은행들이 RG발급을 꺼려 무산될 위기에 처한 일 때문에,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이 나선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정상기업이니 은행들이 협의해서 솔루션을 찾는 게 먼저"라는 당국 관계자의 얘기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난감하기는 협조를 요청하는 하나은행이나 다른 은행들 모두 마찬가지인 상황에 놓여 있다. 당국이 윽박질러서 될 문제도 아니다. 앞으로 취약업종에 대한 은행들의 여신 및 리스크관리 정책과 기업 선순환 사이에서 실마리를 풀 '묘안'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달초 조선 3사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독박쓸라, 입장 바껴 다급해진 하나은행

사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도 대기업대출을 큰폭으로 줄였던 은행이다. 금감원 금융통계정보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지난 한해 동안만 5조4000억원, 2014년말부터 올해들어 3월까지는 6조7000억원이나 줄였다. 같은 기간 시중은행의 대기업대출이 2조9000억원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다.

지난해 9월 대기업대출 비중이 큰 옛 외환은행과의 합병을 전후로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줄여도 여전히 대기업대출이 가장 많은 은행이다. 하지만 옛 외환은행 지점에선 "그동안의 (대기업과의)관계가 있는데 지나치게 여신을 회수한다"는 불만이 있었고 다른 시중은행조차 "무섭게 줄이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이랬던 하나은행이 "정상기업인데 왜 RG발급을 안 해주느냐"며 "어차피 살려야 하는 기업이라면 모두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정부가 지난달 조선업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면서 현대중공업의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의 책임도 무거워졌다. RG발급 동참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게다가 다른 시중은행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자칫 주채권은행이 덤터기를 쓰는게 아니냐는 우려감도 내부에선 팽배하다. 실제 최근 현대중공업 수주 건에 대해 시중은행들이 모두 RG발급을 꺼리면서 수출입은행과 함께 RG를 발급해 줘야 했다. 이러니 더욱 다급하다.

◇ 할말 있는 농협과 우리은행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농협과 우리은행은 각각 내부 이슈 때문에 조선사 등에 대한 익스포져를 줄이려고 하고 있고,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은 다른 은행들이 해주면 같이 하겠다는 소극적인 입장이어서 사실상 RG발급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들 은행 역시 사정은 있다. 농협은행은 조선·해운업종 부실로 올해 상반기에만 1조3000억원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적자도 불가피해졌다.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도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조선업종에 대한 신규 취급은 어렵다"고 못박았다. 취약업종에 대해서도 계속 감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우리은행도 민영화 본격 추진을 앞두고 취약업종에 대한 익스포져를 줄이는 등 보수적인 여신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다른 시중은행도 마찬가지다. 정상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조선을 포함한 5대 취약업종에 대해선 한동안 리스크관리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이날 회의에 참석하는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 입장에선 5대 취약업종에 대해선 리스크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조선업종의 경우 업황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익스포져를 늘리는 결정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 자료:금융위

◇ 당국의 이중적 태도도 '걸림돌'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의 공적인 기능을 강조하며 당국에서 윽박질러서 해결할 상황도 아니라는 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오히려 당국의 이중적인 태도가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상기업이라지만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삼성중공업과 함께 자구안을 받고 그 이행상황을 점검토록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삼호, 현대미포 포함)은 3조5000억원의 자구안을 마련했고 추가 3조6000억원의 컨틴전시플랜(비상시 대책)까지 마련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도 얼마 전까지 정상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금융당국과 주채권은행이 현대중공업에 대해 정상기업이라고, 좋은 기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은행들이 꺼릴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어쩌면 정부가 면피하려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까지 강도높은 자구안을 요구하면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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