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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금융]①정권마다 '쳇바퀴'

  • 2017.06.28(수) 06:47

녹색금융 → 창조·통일금융 → 'ㅇㅇ금융'?
낙하산에 멍든 금융산업…'새 물갈이' 임박

금융 홀대론까지 등장했다. 아직은 새정부의 시각을 단정짓기 어렵지만 일각에선 '약탈적 금융'이란 프레임으로 금융 산업을 다루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금융을 도구로만 인식하는 역대 정권의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금융의 삼성전자'(MB정권), '우간다보다 못한 금융(박근혜 정부)'을 말하기 앞서 금융도 하나의 산업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먼저다. 지난 정권에서 금융산업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짚어봤다. [편집자]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처음에는 창조경제라는 말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창조금융은 왜 없냐면서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더라고요. 기술금융도 다 창조금융의 연장 선상에서 나온 거죠 뭐."


한 금융당국 관계자가 박근혜 정권 초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지난 4년 반 동안 금융 업권에는 정치권의 손길이 쉴새 없이 뻗쳤다. 창조금융에서 시작해 통일금융, 청년희망펀드, 성과연봉제 등 정치권발(發) 산업 기조와 정책이 쏟아졌다. 금융당국이 깃발을 내걸었고 금융사들이 너도나도 동참하며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난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는 쏙 사라졌다.

금융산업이 정치권에 휘둘린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녹색금융이, 노무현 정권에서는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이 금융권을 휩쓸었다. 시작은 화려했지만 정권이 바뀌면 순식간에 금융산업 기조가 바뀌는 일이 반복됐다.

◇ '금융개혁의 완결' 성과연봉제 순식간에 폐기


"아프리카의 들소처럼 앞으로 가야 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2015년 10월 금융위 간부 회의에서 한 말이다. 핀테크 산업 활성화와 보험 자율화, 계좌이동제 등 금융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이어 임 위원장은 금융개혁을 완결하는 마무리 과제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내세우며 '거칠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은 정권교체 뒤 순식간에 없던 일로 되는 분위기다. 당시 금융공기업들은 금융위의 압박에 노조의 동의 없이 이사회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안을 의결했는데 이제 다시 이사회를 통해 이전의 보수체계를 도입할 전망이다. 
관련 기사 ☞ 은행 성과연봉제도 1년 만에 폐기수순…대안은?

사실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 폐기는 눈치 빠른 금융권 인사라면 이미 예견한 일이다.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성과연봉제를 '금융개혁'이라는 틀에 무리하게 집어넣어 추진했을 때부터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미 금융권에서 자취를 감춘 통일금융이나 폐기론이 나오고 있는 기술금융, '눈먼 돈'이 된 청년희망펀드 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 서울 종로에 위치한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노무현·이명박 정부 정책도 폐기 악순환


이렇듯 금융권이 정치권에 휘둘리는 것은 박근혜 정권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녹생성장'에 맞춰 금융사들이 이른바 녹생금융 상품을 앞다퉈 선보였다. 은행들은 녹색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친환경 사업에 자금을 대출해줬고 보험사들은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겠다며 '자전거 보험' 상품을 내놨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상품이다.

이에 앞서 노무현 정권에서는 '동북아 금융허브론'이 금융 산업의 비전으로 제시됐다. 2015년까지 우리나라를 동북아의 3대 금융허브로 키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나마 금융허브론의 경우 창조금융이나 녹색금융과는 다르게 금융산업을 독자적인 차원에서 발전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시도는 좋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결국 정권교체 뒤 동력이 떨어지면서 실패하게 됐다는 점에서 헛물만 켠 꼴이 됐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이번 정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정부가 금융권 차원의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하지 않더라도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이 먼저 알아서 정부의 정책 기조를 따를 것이라는 우려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는 일자리 금융이나 서민 금융이 대세가 되지 않겠냐"며 "금융이 정권의 경제 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지난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 친박 낙하산 자리에 '친문 낙하산' 우려도


금융권이 정부와 정치권에 휘둘리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낙하산 인사'다. 금융권 낙하산 인사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금융사 등기임원 중 관피아(공직 경력자)는 1004명에 달한다. 이들 중 정치권에 줄을 대 '낙하산'으로 발탁된 경우가 상당수다.

금융당국 출신이거나 금융권에서 경력을 쌓은 정치인은 전문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낫다. 지난 두 정권에서 청와대와 국회, 국정원 등 정치권 인사 70여 명이 금융권 임원으로 왔는데 이들은 금융 경력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금융공기업 감사와 사외이사 자리가 주요 타깃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인사추천위원회를 가동해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장들에 대한 인사 추천 작업에 착수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낙하산'으로 임명된 인사를 솎아내는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 안팎에선 이 과정에서 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들이 다시 곳곳에 포진하는 '악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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