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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금융]③그래도 산업인데

  • 2017.06.30(금) 09:37

기대 높지만 홀대 여전…인식 바뀌어야
"관치 폐해 줄이고 금융사 노력도 필요"

"문재인 정부 금융 홀대론이요? 글쎄요. 금융위원장 인선이 지연되고 있는 건 맞죠. 근데 꼭 이번 정부의 특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봐요. 오래된 얘기죠."

새 정부 들어 금융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금융 홀대론에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한쪽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금융산업에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성급한 얘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조만간 인선될 새 금융위원장의 무게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시선이다.

다만 '홀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금융 산업이 국내 다른 산업에 비해 뒤처졌다는 데에는 금융 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한다. 이는 금융을 '산업'으로 보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 문제이기도 하지만 금융사 스스로도 변화와 혁신에 적극적이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정부와 금융사라는 두 축이 함께 변하지 않는 한 산업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관치·낙하산에 빛바랜 '금융 개혁'

'귀남이와 후남이.' 지난 정권 초인 2013년 금융권에선 과거 드라마 '아들과 딸'이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 박근혜 정권에서 첫 금융위원장을 맡은 신제윤 전 위원장의 발언 때문이었다. 신 위원장은 금융산업의 처지를 '아들과 딸'의 여주인공이 후남이와 같다고 평했다. 아들로 태어나 물심양면 지원을 받는 귀남이와 다르게 뒷바라지 한 번 받지 못하고 구박 덩어리로 자란 후남이와 처지가 같다는 의미다.

신 전 위원장은 그러면서 '10-10 밸류업'을 새로운 금융비전으로 제시했다. 금융업의 부가가치 비중을 10년간 10%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이다. 금융사들이 신흥국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도록 하고 은퇴와 노후 설계 등 새로운 금융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도록 하겠다는 방안이다. 이후 신 전 위원장은 재임 동안 '금융혁신' 방안들을 추진했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를 이어받아 '금융개혁' 방안들을 이끌어왔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핀테크 산업 활성화와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보험 자율화를 비롯한 규제 완화 등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토대를 닦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과연봉제의 무리한 추진과 청년희망펀드 동원, 관치와 낙하산 인사 등이 금융산업의 발목을 잡았다. 정치권이 금리와 수수료를 무작정 낮추는 등 금융을 독자적인 산업이 아닌 다른 산업을 지원하는 '공공재'쯤으로 보는 인식도 여전했다. 어느새 '10-10 밸류업'의 청사진은 자취를 감췄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 이명근 기자 qwe123@

◇ 새 정부, 금융 전문가가 안 보인다

전문가들은 금융산업을 통해 다른 산업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돈을 유통해 특정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게 금융 본연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금융산업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하겠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한다. 한 연구원의 연구위원은 "금융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영역은 애매한 구석이 많아 이를 객관적으로 산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산업을 지원한 뒤 스스로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현상이다. 이는 금융 산업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치권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금융이 다른 산업의 발전을 돕고 스스로도 커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며 "정권에 휘둘리면서 금융 산업이 기가 죽어 있는 면도 있고 금융사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직 새 정부의 첫 금융위원장이 임명되지 않아 금융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 방향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다. 일단 금융권 안팎에서는 현 정부 인사 중 금융전문가가 없다. 반면 금융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인사가 여럿 눈에 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우 저서 등을 보면 은행 등 금융권을 나쁘게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인식 변화 필요…금융 효율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금융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한쪽의 인식만 일방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정치권의 인식도 문제지만 그런 인식을 초래한 금융권 스스로의 문제도 고쳐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도록 해 산업을 한 단계 도약하도록 하겠다며 추진한 보험 자율화 이후 보험사들은 보험료 인상에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보험료를 올리는 게 불가피했더라도 새로운 상품 개발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결국 정치권의 보험료 인하 카드를 불러왔다.

금융사들이 글로벌 시장을 내다보거나 미래 새로운 수요를 예측해 가치를 창출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 성과연봉제 추진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과정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사실 취지 자체는 맞는 방향 아니냐"며 "혁신 없이 국내에서만 돈을 벌고 고액 연봉을 챙기는 이미지는 금융권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정권과 정치권의 인식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 금융이 독자적인 산업으로서 제대로 돌아가도록 해야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 성장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인식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 돈을 적절한 곳에 공급해 효율성을 높이는 게 금융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가야 할 길은 멀다. 윤석헌 교수는 "금융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지금의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 금융사들의 보폭을 넓혀줘야 한다"며 "또 금융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관치를 막기 위한 금융감독 체계 개편도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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