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학계, 회계법인 등 전문가집단이 보험사의 자본확충 보다 시스템 정비, 전문인력 충원을 우선해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이들은 금융당국의 인위적인 자본확충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정도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김수미 연구원이 공동 연구한 'IFRS17과 솔벤시Ⅱ의 비교·분석을 통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감독기준에 관한 설문조사 연구'에 따르면 전문가집단은 IFRS17의 시행연기 이유에 대해 응답자(복수응답)의 53.5%가 '부채공정가치 평가모델 및 제도변화를 반영한 회사별 시스템 개발을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라고 답했다.
또 IFRS17 시행을 연기해야 하는 이유로 '전문인력을 양성해야하는 시간이 필요해서'라는 응답이 46.5%로 뒤를 이었다. 달라지는 제도에 따른 회계시스템 개발 뿐 아니라 상품 등 전사적인 체질개선과 이를 수행할 전문인력 준비 정도를 따져 IFRS17 시행시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계약에 대한 회계처리 변경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43.6%를 차지했다. 그러나 'IFRS17 도입시 자본잠식으로 인한 자본확충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 대해서는 39.6%만이 공감했다. 보험사와 금융당국이 IFRS17을 대비해 자본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설문조사는 학계 26명, 회계감사 및 세무, 보험설계·계리 등 회계법인 소속 89명, 감독기관 및 금융전문가 17명으로 총 121명의 응답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정도진 교수는 "업계에서는 자본확충을 위해 계속해서 시행을 미루자는 주장이 반복되는 상황인데, 보험업 종사자들이 자본확충을 가장 큰 과제로 보는 반면 전문가집단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계 전문가들은 '진짜 자본확충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중립적인 입장으로 나타났다"며 "자본확충은 IFRS17 도입에 따른 사후적 결과인데 반해 시스템 변화나 인력충원은 사전적 변화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자본확충이 사실상 의미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감독당국에서 인위적으로 자본인정 기준을 늘리는 감독기준을 개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변경기준에 맞게 보다 단순한 구조의 보험상품 개발과 경영, 건전성 마련 등 전사적인 시스템 실질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2022년 IFRS17을 도입할 경우 부채를 시가평가 함에 따라 보험사의 부채규모는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이는 보험사들의 건전성이 한순간에 악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보험업계는 이를 막기위한 자본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 교수는 "시스템의 변화는 단순히 바뀐 회계기준에 맞는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 보험사의 투자전략, 부채·자산관리 등 전반적인 부분을 새로운 기준에 맞게 바꿔 재정건전성을 담보해야 하는 것"이라며 "보험사의 실질은 같은데 감독기준을 바꿔 일시적으로 자본을 인정해 주는 것은 사실상 건전성 담보를 위한 회계기준 변경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설문조사에서 전문가들은 감독당국이 IFRS17 도입시 보험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3년간 단계적으로 할인율을 낮추는 방안(현재 공시이율 3%→2%)을 추진한 것과 관련해 '보통' 응답을 제외하고 '동의한다(33.0%)'와 '동의하지 않는다(32.3%)'가 거의 유사하게 나타났다. 특히 학계의 경우 동의하지 않는다(42.3%)는 답변이 동의한다(23.1%)는 답변보다 약 2배가량 높게 집계됐다.
이 역시 보험업계, 당국과는 상반된 의견이다.
정 교수는 "이 설문결과는 감독당국의 인위적인 방법으로 연착륙을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구심을 나타낸 것"이라며 "보험사들이 스스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상품을 개발해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으로, 감독당국에서 인위적인 조정을 통해 연착륙을 시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사들이 스스로 감내할 수 있는 연착륙 방안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감독당국은 이같은 보험사의 실질변화에 대한 준비 정도를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문제는 이같은 경영실질에 대한 당국의 점검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장기간 계획을 세워서 바꿔가야 하는 부분인데 각 사마다 입장과 출발선이 달라 사실상 경영과 관련된 부분들은 점검이 쉽지 않다"며 "결국 새로운 제도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험사가 스스로 깨닫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집단은 보험사들의 IFRS17 시행 준비가 더딘 이유 중 하나로 CEO의 임기가 짧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IFRS17 도입 이후까지 CEO의 임기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