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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금융]①'재미'모아 태산

  • 2019.03.29(금) 09:25

저금리시대, 재미와 연동한 예·적금 인기
걸음수·금연·야구성적 등과 금리 연계
금융사, 디지털플랫폼 고객 유치 효과

서랍 안에 반듯하게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小) 하지만 확(確)고한 행(幸)복의 하나(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1994년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의 한 대목이다. 팬티 모으는 게 취미인 작가는 백화점에서 대여섯 장을 한꺼번에 사서 서랍장 안에 쌓아두고 작은 행복을 느낀다. 한 작가의 '행복론'이 25년이 지나 국내 소비문화를 넘어 금융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금융권에서 소확행은 특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별다른 제테크가 없던 시절부터 이자가 또박또박 쌓이는 적금은 돈을 모으는 재미와 만기때 원리금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일종의 소확행이었다. 2015년에 방송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온 "은행 금리가 쪼까 내려가지고 15%여. 그래도 목돈은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 따박따박 받는 게 최고지라"는 대사를 보면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고금리 시대는 저물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08년 7월 5.25%에서 현재 1.5%까지 떨어졌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은행에 돈을 넣어 두는 것은 사실상 원금을 까먹게 되는 상황이다.

저금리 시대에도 적금이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에는 '재미'가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적금에 대한 매력은 떨어졌지만 이자와 재미를 연동해 돈 모으는 재미를 알려주는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전통적인 금리 우대 조건이 월급통장 개설, 카드사용 실적 연계 등 금융사에 유리한 조건이었다면 최근 소확행 적금의 특징은 건강, 취미 등 고객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응도 좋다.

KEB하나은행의 '도전365 적금'은 기본 금리 1.3%에서 하루에 1만600보를 걸으면 금리를 최대 3.75%까지 올려준다. 원래 작년말까지만 판매될 예정이었던 적금을 찾는 이가 늘면서 판매기간을 올 7월까지 연장했다.

고객이 정한 자동이체 요일(최대 3개)에 따라 우대금리가 적용되는 신한은행의 '쏠편한 작심3일 적금'은 작년 11월 출시이후 지난 22일 기준 19만6996계좌, 927억원이 판매됐다.

NH농협은행의 NH올원해봄적금은 금연, 다이어트 등 고객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1% 우대금리를 얹어준다. 광주은행, 경남은행, 부산은행, 신한은행 등은 프로야구 성적과 연계해 우대금리를 주는 적금을 선보였다.

우리은행의 '우리 여행적금'은 만기때 항공사(제주항공) 마일리지로 전환하면 추가로 5% 마일리지를 더 준다. 1년간 월 최대 50만원을 납입하는 상품으로 금리는 1.8~6%까지다. 작년 11월 선보인 이 여행적금은 지난 2월 처음 준비된 10만계좌가 다 팔려 나갔고 추가로 10만계좌를 더 선보였다.

'우리 여행적금'을 기획한 손형민 우리은행 개인영업전략부 과장은 "금융상품이 아닌 여행상품으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아래는 손 과장의 전화 인터뷰 내용이다.

▲기획 배경은
-여행에 대한 니즈가 많아지면서 적금을 여행 패키지 형태로 구성을 해보자고 접근했다. 여행을 준비하는 패턴을 분석했더니 패키지 여행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했다. 자유여행 패턴은 여행자금 마련, 항공권 호텔 예약, 환전, 면세점 쇼핑 등이다. 이 패턴에 맞춰 적금상품을 기획했다. 제주항공을 컨택한 이유도 저가항공을 이용해 일본과 동남아 등으로 여행 가는 수요가 많아서다.

▲ 구체적인 금리 조건은
- 기본적인 금리는 1.8%다. 여기에 급여통장 개설 0.5%, 공과금 이체 0.2%, 12개월 카드 사용 1000만원 이상 2%(2000만원 이상은 3%) 등 4.2%가 우대금리로 적용된다. '낚시'로 볼 수도 있지만 기존 주거래 고객에 유리하게 금리 혜택이 설계됐다.

▲ 항공 마일리지는
- 적금 만기때 원금을 제주항공 마일리지로 전환하면 마일리지 5%를 추가로 쌓아준다. 600만원을 마일리지로 전환하면 30만 마일리지가 추가되는 것이다. 일부만 마일리지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찾을 수 있다.

▲ 제주항공 국제선 왕복항공권 할인권(최대 10%), 현대백화점인터넷면세점 적립금(최대 8만원)과 1년간 최상위 멤버십인 자격 등 가입조건도 좋다
- 기획 당시에 제주항공과 현대백화점 담당자를 만나서 최고의 여행 상품을 만들어보자고 얘기 나눴다. 은행은 손해를 보더라도 최고의 금리를 제공하고 제주항공과 현대백화점도 기존에 없던 서비스를 내놓기로 했다. 금융상품을 설계하기 보다 좋은 여행상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며 만든 적금이다.

지난해 ‘신한 KBO 리그 적금’ 최종 금리.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한 신한 두산베어스 적금 금리는 2.85%로 꼴등이었던 신한NC다이노스(1.91%)보다 금리가 0.94%p 더 높았다[사진 = 신한은행 홈페이지]

소확행 예·적금은 조건을 충족한다면 금리도 최고 수준이다. 금융감독원 금융상품통합비교공시에 따르면 '우리 여행적금'의 금리는 저축은행을 제외하고 적금 중에서 금리가 가장 높다. 정기예금 중 가장 금리가 높은 상품은 '2019 신한MY CAR 프로야구 정기예금'이다. 고객이 선택한 구단이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진출 등에 따라 최고 연 1% 우대 금리가 적용 최대 3%까지 제공된다.

은행 입장에선 소확행 상품은 새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통로다. 걸음수를 삼성헬스 앱이나 아이폰으로 측정하는 하나은행의 '도전365 적금' 이용자는 20대 27%, 30대 34%, 40대 27% 등 88%가 20~40대 고객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기존 하나은행 거래 없었던 고객이 비대면으로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NH올원해봄적금도 고객이 직접 농협은행의 모바일 통합플랫폼 '올원뱅크'을 통해 금연, 다이어트 등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NH올원해봄적금 상품 개발에 참여했던 양성주 과장은 "기존 우대금리 조건이었던 카드사용 실적, 급여이체 등을 배제하고 플렛폼을 활성화할 수 있는 쪽으로 상품을 기획했다"며 "고객이 금연 여부 등을 체크하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올원뱅크에 접속해야 하는 구조다. 상품도 예상보다 빠르게 판매됐고 플렛폼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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