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답보상태에 놓인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청구간소화 추진이 최근 다시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계의 반발로 수년째 고배를 마셨지만 이른바 '문재인케어'를 추진 중인 정부가 실손보험 체질개선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새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 정치권·소비자단체·보험권…간소화 한목소리
11일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서울YMCA,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소비자와함께, 소비자교육지원센터 등 7개 소비자단체와 함께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를 즉각 도입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간소화 추진은 보험사가 청구거절을 하기 위한 꼼수'라며 실손보험 청구간소화(이하 간소화) 추진을 반대하는 입장을 신문광고로 내자, 이날 소비자단체가 의사협회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소비자단체들은 3400만명이 실손보험을 가입한 가운데도 증빙서류 구비 등 청구과정이 복잡해 미청구로 이어지는 건이 70%(통원치료) 가까이 된다며 이를 간소화해 소비자의 편익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소비자단체는 "현재 소비자들이 실손보험 청구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청구과정이 복잡하고, 여러 증빙서류를 구비하기 번거롭다는 점"이라며 "청구거절을 위한 꼼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간소화가 추진될 경우 실손보험 가입자 70% 가량이 소액까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동안 미청구된 건들이 자동으로 청구되면서다.
의료계의 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관련해서도 "이미 소비자동의를 거쳐 (보험사에) 제공되고 있고, 종이로 전달하는 것 대비 전산 제출이 유출 위험이 크다는 주장은 억지"라고 반박했다. 이어 "다만 의료기관과 보험사 간 의료정보 데이터베이스 공유와 시스템 연결이 필요한 만큼 안전성확보와 개인정보 오남용 예방장치는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단체는 "정부부처와 이익단체들이 소비자를 볼모로 이해관계를 내세워 간소화 도입이 지연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안게 될 것"이랴며 "더이상 간소화가 지연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보험업계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 사실상 미청구건이 어느 정도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며 "이에 따른 낙전수익이 감소하고 보험금 지급 증가에 따른 손해율이 상승하겠지만 소비자의 신뢰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간소화가 효율적인 업무활용을 비롯해 비용축소에도 긍정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에 따라 매년 대량의 종이문서를 전산화하는데, 전체 가입자 중 30% 가량이 청구하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1건만 청구해도 1000만건을 넘어서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에 대한 업무부담과 단순입력 인력 등에 따른 비용부담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간소화시 불필요한 단순업무가 줄어들고 효율적인 업무활용이 가능해진다"며 "시스템, 프로세스, 업무부담이 감소하는 것도 있지만 청구건을 입력하는 고용인력이 줄어 미청구건으로 나가는 비용보다 비용절감 부분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손해율 관리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도 기대하고 있다. 간소화로 청구과정에서 발행할 수 있는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를 줄이고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손해사정을 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손해율 안정화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 의료계 반발 무릅쓴 법안 통과 관건
10년 이상 의료계의 반발이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인 시행은 법안 통과과 이뤄져야 가능하다. 그러나 법안이 의료계의 반대를 뚫고 통과될지 미지수다.
고용진 의원은 지난해 9월 간소화 추진을 위해 요양기관(병·의원 등)에 진료비 계산서·영수증 등을 보험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 같은 전송업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위탁하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의료계가 지적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심평원은 전국 병·의원과 이미 전산망이 깔려있고 민영보험사의 자동차보험 관련해서도 이미 심사 업무 등을 진행하는 만큼 정보유출이나 안전성 문제를 담보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고용진 의원은 "결국 법안이 통과돼야 간소화가 가능한데 (합의 없이) 의료계의 반대속에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의료계가 반대하는 이유를 듣고 우려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실손보험 관련 권익위의 의견제시가 있었기 때문에 복지부와 금융위를 중심으로한 TFT(테스크포스팀)가 꾸려져있고 최근 총리실에서 관심을 보이며 TF를 보다 결정권 있는 단위로 격상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추진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한편 심평원을 통한 간소화 추진과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의료계는 공보험을 관리하는 심평원을 통해 간소화 추진이 이뤄질 경우 자칫 비급여 관리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의료계의 우려를 줄이기 가장 적합한 통로로 심평원을 통해 간소화를 추진하려는 것이지만 심평원을 통해 비급여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부분이 의료계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중간 주체인 심평원과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치권 등에서는 개정 법안이 통과되면 심평원이 당연히 업무를 이행해야한다는 입장인데, 가장 중요한 망 이용 부분에 있어 가능성 여부 타진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심평원 관계자는 "실손보험 간소화 추진과 관련해 (보험업계나 정치권 등에서) 우리에게 별다른 요청이 들어온 적이 없다"며 "때문에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를 망을 통해 이용 가능한지, 어떤 영향 등이 있는지도 검토한바 없다"고 말했다.
또 개정안과 관련해 지난해 정무위 심사검토보고서에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심평원의 위탁 가능한 업무를 '다른 법률에 따라 지급되는 급여비용의 심사 또는 의료의 적정성평가에 관한 업무'로 한정하고 있어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통해 추가적으로 근거를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