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덮친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한국은 세계 여러나라가 부러워 할 만큼 성공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질병관리본부, 의료진, 일선 공무원뿐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의 헌신이 깔려있다. 경제의 혈맥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의 노력도 조명받을 만하다. 금융시스템이 건재했기에 영세상인,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이 이뤄질 수 있었다. 금융기관의 알려지지 않은 노력을 조명한다. [편집자]
수화기 너머 남성은 재난지원금이 당장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생계를 꾸리기가 막막해져 쌀조차 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채무관계가 워낙 복잡한 탓에 신용카드를 쓸 수 없어 지원금을 받기 어려웠다. 당시엔 카드로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지원금을 받으려면 통장을 만들어 체크카드를 새로 발급받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며칠 전 인터넷은행 비대면 통장을 개설한 이력이 있는 탓에 통장 개설도 어려웠다. 통장을 개설한 이후 약 한 달여간 신규 통장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단기간 다수계좌 개설 제한에 따른 조치였다.
사연을 전해 들은 콜센터 직원은 안타까운 마음에 매니저에게 민원 내용을 전했다. 매니저는 여운정 신한카드 서울2고객센터장에게 보고했다. 원래 지원금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을 돕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계열사인 신한은행에 도움을 청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영업점에 전화를 걸었다.
영업점은 고객의 사정을 듣고 지점장 예외 승인을 통해 통장 개설을 약속했다. 당시 콜센터 직원이 '카드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해당 민원센터에 문의해야 한다'라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했다면 어땠을까. 행여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밥조차 굶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면 아찔한 기억이지만 여운정 센터장은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콜센터 직원의 공감능력이 없었다면 이 고객을 도울 수 없었을 텐데, 이 공감능력은 디지털 채널에선 만나기 힘들다. 콜센터만이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최전선에 콜센터가 활약하고 있다는 데 입을 모은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에 있는 신한카드 서울2고객센터에서 여운정 센터장을 만나 그간의 활약을 물었다. 여 센터장은 1994년 옛 LG카드에 입사해 27년째 카드업계에 몸담고 있다. 올해 초 센터장이 되자마자 코로나19가 터졌다.
코로나19로 긴장감 돌던 시간들
처음에는 메르스처럼 잠깐 지나가고 말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서울2고객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은 170여 명. 의심환자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즉시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콜센터 한 곳이 마비가 된다고 회사가 멈추진 않겠지만, 그만큼 다른 콜센터가 바빠져서 어딘가 삐걱거릴 게 뻔하다.
여 센터장의 가장 큰 임무는 서울2고객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 마스크 확보가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당시는 공장이 마스크를 찍어내는 족족 공적 마스크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인근 약국은 물론 온라인 매장을 샅샅이 뒤졌다. 행여나 마스크 공장에 닿는 인맥이 있지는 않는지 더듬어봤지만 쉽지 않았다.
"인근 동작세무서에서 공무원분들이 콜센터 점검차 오신 적이 있는데요. 우리보다 잘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급한 마음에 마스크 좀 구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공무원분들은 면 마스크를 끼고 있더라고요. 공무원이라 더 구하기 힘들다고 했어요. 어느 날 보니 제가 방역업무에 주력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대구 신천지발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면서 긴장감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대구에 있는 콜센터는 문을 닫았다. 꿈속에서 콜센터 문을 몇 번이고 열었다가 닫았다를 반복했다. 혹시 문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할까. 전화기 붙잡고 직원들 챙기면서 본사에 보고할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루는 대구에 가족이 있는 한 직원이 가족 걱정에 주말에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직원을 관리하는 매니저님이 '정말 미안하지만 집에 안 가면 안 되겠느냐, 나 그만 봐야 할 수도 있다'라고 하더군요. 생활 수칙을 신속하되 촘촘하게 짜서 일상생활 속에서 최대한 잘 준수하려고 노력했고 직원분들도 잘 따라와 주셨어요."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민원 대응 과정에서 감정 상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지라 서로 얘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마주보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니 불평이 쇄도했다. 일부 젊은 직원들은 일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고객들은 상담사 마스크 때문에 안 들린다고 짜증을 냈다.
"잔소리가 늘었어요. 전 사람 만나서 얘기하는 거 좋아하는데 콜센터 직원분들이 계시니 약속도 가능한 한 뒤로 미루고 딸 아이에게도 친구는 나중에 만나라고 했죠. 항상 세심하게 체크하고 주의하는 건 좀 익숙해진 것 같긴 한데 여전히 마음은 긴장 상태예요. 그땐 혼자 불안해했던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콜센터 공감능력에서 가능성과 전문성 엿봤다'
콜센터 업무는 강도를 더해갔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지급 주요 채널을 카드사로 정하면서 관련 문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통 하루 평균 총 상담 요청 건수가 13만 건 정도였다면 당시엔 25만 건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난생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평소 업무의 2배를 소화하자니 모두가 지쳐갔다.
당시 콜센터는 주민센터를 방불케했다. "주민등록 세대원수랑 내게 배정된 금액이 다른데 왜 그런 것이냐"부터 "남편과 현재 별거 중인데 남편이 내 지원금까지 받아서 다 쓰고 있다"는 등의 민원이 쏟아졌다. "신청한 거 무조건 취소해달라"든지 "주민센터에 너희가 직접 문의해 처리하라"는 식의 공격적 언사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직원들의 활약은 돋보였다. 민원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주민센터와 다른 금융회사에 연락해 해결방법을 찾았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곤란함을 외면하기 어려워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발품을 판 셈이지만 '감사하다'는 피드백에 피로를 잊었다. 콜센터가 가진 전문성이 빛을 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로 50~60대 분들이 디지털 채널을 경험하게 됐다고 하잖아요. 디지털 채널은 앞으로 더 정교해지고 편리해질 거예요. 하지만 공감을 통해 편의를 제공하는 역할은 여전히 사람 영역에 남아있을 겁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 속에 담긴 갈증을 잡아내는 게 쉽지 않죠. 디지털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는 콜센터에서 가능성을 엿본다. 카드사 업무 영역이 넓어지고 처리 기술도 정교해지면 고객 문의 대응은 더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더 촘촘한 프로세스를 뛰어넘는 대응이 필요하다. 주민센터가 아닌 콜센터를 찾아 제도를 물어보는 것은 콜센터의 고객 대응을 더 선호하고 또 신뢰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7년 동안 직장생활하면서 여러 업무가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주변의 기대에 따라 역할이 커지는 경우가 있죠. 사실 가장 힘든 건 현장 직원분이잖아요. 사실 제가 열심히 한 건 아침에 간식 챙기는 거였어요. 최근엔 에그드랍을 하기도 했죠.(웃음)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지금의 어려운 시간도 잘 지나갈 겁니다."
여운정 센터장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 콜센터 상담원들은 오늘도 답답한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누군가의 귀한 가족인 상담원들에게 고객들 역시 따뜻한 공감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