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글과 아마존을 갖고 있는 기업이 JP모건까지 갖게 되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라."
15일 오후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은행혁신세미나' 토론에서 한동환 KB국민은행 디지털금융그룹 부행장이 플랫폼 업체의 금융업 진출에 날을 세웠다.
이형주 카카오뱅크 최고사업책임자(CBO)가 "은행이 고객 접점을 잃어버리고 있다. B2B(기업 대 기업) 상품 공급자로 역할이 축소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발언을 한 직후였다.
한 부행장은 "제조업 상품은 만져보고 써보면 알 수 있지만 금융상품은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상품"이라면서 "금융상품을 제공하고 설명하는 (은행의) 금융 큐레이터의 역할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기술이 갖고 있는 사회적 역풍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금융 자체로 고객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지위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한 부행장의 언급은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업체가 강력한 영향력을 내세워 독점적 판매 채널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경계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른 토론자들 입장도 비슷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는 이른바 제판분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판매 채널에서 경합적인 시장 경쟁구조가 이뤄져야 한다"며 "판매 채널 독점화가 이어진다면 제조업자는 판매업자에 종속된 하청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그래서 플랫폼 규제와 같은 얘기가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나오고 있고 우리도 적극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건호 한국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모든 고객들이 플랫폼 상에서 내리는 재무적 의사결정을 자기 책임으로만 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서 "고객 접점이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지더라도 누군가는 어드바이저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은행이 이 부분의 경쟁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그 과정으로 가는 길에서 빅테크 핀테크 업체와 경쟁 관계를 맺을 것인지 정말 경쟁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는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금리 저성장 기조가 이어져 은행 사업 보폭이 좁아진 만큼, 타업권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김윤주 보스턴컨설팅 파트너는 "금리가 너무 낮아져서 이자받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며 "연 1% 이자 받는 것보다 카드사 등에서 소비혜택 1%를 받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파트너는 "고객이 빅테크 플랫폼과 금융사 서비스를 구별하지 못하는 시대가 온다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미래를 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