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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갈 곳이 없어진 제3보험

  • 2021.12.28(화) 09:30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란 시(詩)를 통해 일상 속 무심코 스쳐지나갈 수 있는 작은 것에 대한 교감과 지속적인 관심을 압축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시에서 나와 마주치는 현실은 우리를 재촉한다. 유행은 계속해서 변하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지겨움을 느낀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풀꽃과 교감하며 이를 기억할 수는 있겠지만 시인의 감성이 아니라면 하나의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쉽지 않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현대인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선후보는 유권자, 기업은 소비자, 방송은 시청자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유튜버가 대놓고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하는 세상에서 풀꽃처럼 수줍은 대상이 대중의 시선을 끄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또한 적극적인 공급자라도 절박함이나 조금의 지루함만 보여도 수요자는 얼른 관심의 대상을 옮긴다. 이런 정신없고 빠른 세상 속에서 제3보험에 대한 보험사의 관심은 이제 지루함을 넘어 절박해 보인다. 손해보험은 제3보험으로 성장했기에 차치하더라도 사망보장에 대한 필요성이 후퇴한 생명보험까지 합세하여 지루한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경쟁의 주요 방향은 과거 보장되지 않던 질병까지 보험의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뇌출혈이나 급성심근경색증만 보장하던 시절을 떠올려 볼 때 뇌혈관질환과 허혈성심장질환을 넘어 뇌전증이나 부정맥과 심부전까지 보장범위가 넓어진 약관의 등장은 격세지감을 느낀다. 표면적으로 이런 변화는 소비자를 지향한다. 과거 보장받지 못한 질병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약관의 등장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말 여기까지 보험이 보장해야 할까'란 생각을 해본다. 특히 오랜 시간 '과거보다 더 좋은 보험이 나왔다'란 말을 반복적으로 들어 온 소비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새로운 약관과 소비자의 간극이 생기는 원인은 공급자 중심의 변화에 있다. 모집 시장이 포화되고 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면서 피보험목적이 사람인 제3보험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 보험 산업은 미래는 고사하고 당장의 현실도 견디기 어렵다. 결국 한정된 피보험자를 상대로 과거의 보험을 갈아 태우는 승환계약이 유일한 신계약 체결 방법론처럼 여겨진다. 다만 기존 계약의 해지 등은 계약자의 금전적 손실이 클 수 있기에 기회비용을 상쇄할 명분이 필요하다. 따라서 과거에는 보장하지 않았던 질병의 영역까지 확대하며 신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발병률이 높은 질병은 그 자체로 소비자의 필요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가 몇 년 동안 급격하게 변한 것도 아닌데 과거와 비교해 넓어진 보장범위에 대한 집착은 공급자의 절박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미봉책으로 그칠 우려가 크다. 계속해서 복잡해지는 약관은 결국 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멀게 만들 수 있다. 가입도 어렵지만 여전히 보험을 어렵게만 느끼는 고령층에게 약관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될 것이다. 또한 보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젊은층에게는 지루함까지 더해진 느낌을 준다.

모집 시장의 포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규모를 축소하고 비용을 줄이는 출구전략을 빠르게 전개해야 한다. 과거처럼 양이 곧 질은 보증하던 시대는 끝났다. 신입 설계사를 뽑아 인맥을 통해 보험을 밀어내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 양보다는 질을 높이는 전략으로 선회가 필요하다. 또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고빈도 저심도 위험으로 무분별하게 확장하는 것은 당장의 갈증을 해소할 수는 있지만 소비자의 지겨움과 보험 산업에 대한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높은 손해율로 보험사의 비용 축소 전략에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도 크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은 길을 잃는다. 아무도 구매하지 않는 물건과 서비스의 존재 가치는 없다. 최근 몇 년 간 제3보험이 걸어온 길은 소비자를 위한 방향보다는 공급자의 절박함을 숨기기 위한 재촉된 발걸음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자세히 보아도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제8차 개정 '한국 표준 질병·사인분류표'에서 보장하지 않는 질병이 없을 정도로 느껴진다. 또한 오랫동안 소비자가 들어온 '더 좋은' 보험에 대한 말은 지겨울 지경이다. 보험이 보장해야 할 위험의 본질인 저빈도 고심도로 돌아가야 한다. 또한 제3보험이란 포화된 곳에서의 경쟁적 발걸음을 잠시 쉬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를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한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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