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고공행진하고 있는 물가 상승세에 대해 다시 우려를 표했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둘러싼 상황이 녹록지 않아 경제성장률 하락에 대한 우려도 나오지만 당장은 물가 상승세가 더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다음 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정책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어 한국은행도 이 같은 대외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음도 시사했다.
이처럼 물가 걱정을 드러내고 있는 이 총재지만 장기적으로는 '비둘기파(성장 중시 통화정책 선호 성향)'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경제 체력을 탄탄하게 만들어 통화정책을 빡빡하게 운영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의 취임 일성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출입 기자들과 만나 "오늘까지 봤을 때는 물가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앞으로의 데이터를 보고 정책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이창용 총재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진단했다. 저성장과 고물가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가운데, 경제성장률과 관련해서는 거리두기 완화로 인해 소비 중심으로 회복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이 총재의 진단이다. 일단 현재 국면에서 성장 관련해서는 적어도 '플러스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성장 면에서는 며칠 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전망을 보면 성장률도 좀 떨어지는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 해외요인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도 "다만 오늘(25일)부터는 거리두기가 완화돼서 소비가 올라갈 가능성도 있어 성장이 어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가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당장 다음 달 있을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정책금리 인상도 우리나라 기준금리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칠 변수지만, 물가 상승세가 더욱 우려스럽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이 총재는 "유가, 곡물 등의 가격이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줄지 봐야할 것 같다"면서도 "(4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기준금리 인상은) 4%가 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였기 때문인데 더 올라갈지 고민을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상승률이 더욱 높아지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통해 물가상승 압력을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이어 "5월 금통위 결정의 큰 변수는 미국 FOMC 미팅에서 0.5%포인트의 인상"이라면서도 "0.5%포인트 인상하거나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인상을 나타냈을 경우 자본유출, 환율의 움직임을 봐야하겠지만 전반적인 기조를 봤을 때는 물가를 더욱 걱정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환율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이날 달러/원 환율이 1250원 선으로 상승하는 등 원화 약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안정적인 수준이라는 게 이 총재의 평가다. 동시에 원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 총재는 "원화는 다른 이머징 마켓(신흥국)이나 유로화 등 다른 기타 화폐에 비해 크게 절하가 된 상황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미국 금리가 더 올라가면 절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환율이 금리 정책을 펼칠 때 정책 변수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시장에서 결정되는 변수기 때문에 급격한 쏠림 현상이 있거나 변화가 있을 때 조정하는 역할은 하겠지만 환율만을 목표로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부터 '매의 발톱'을 드러낸 이 총재지만 그는 장기적으로는 '비둘기'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중장기적인 경제성장과 구조적인 우리나라의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통화정책만을 활용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구조조정, 재정과 통화정책이 아닌 창의성 계발, 생산성 증진 등을 통해 고령화 진행 중에도 성장률이 빨리 안 떨어지고 높은 수준을 유지해서 국민 생활의 질이 올라가도록 노력하고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비둘기파가 되고 싶고 이러한 측면에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성장을 줄이고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정책 등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앞서 이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이를 '말을 바꿔 탈 때가 왔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총재는 "(과거에는) 정부 주도 성장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향수가 있고 믿음이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어려운 것 그리고 해서는 오히려 부작용이 나는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해주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며 "이제는 정책을 펼칠 때 공급자 중심에서뿐만 아니라 이것이 수요자 편의에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하는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