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러/원 환율이 치솟으면서 인기를 끌었던 은행 외화예금에 예치된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달러/원 환율이 낮았을 당시 재테크 수단으로 외화예금을 선택했던 고객들이 차익실현에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달러 예금과 달리 엔화 예금에는 이른바 '환테크' 족들의 관심이 쏠리는 모습이다. 그간 일본 엔화는 달러와 마찬가지로 안전자산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가치 변화가 비슷하게 나타났지만, 최근 달러가치는 높아지는 반면 엔화 가치는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달러가치
지난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1265.2원으로 마감했다. 전날(26일) 2020년 3월 이후 2년 1개월 만에 1250원선을 넘어서더니 하루 만에 14.4원이나 폭등했다.
달러 가치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들어서다. 3월전까지만 해도 1200원 선에서 박스권을 형성하던 달러/원 환율은 3월 초 1210원 선으로 상승하더니 그 이후 곧장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 가치의 상승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정책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달러화는 중국 코로나 봉쇄 확산에 따른 우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긴축 경계감 등으로 금융시장내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화되면서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달러 가치 상승이 지속되자 일단 우리나라 당국은 경계에 나선 모습이다. 달러/원 환율이 지나치게 더 오를 경우 가뜩이나 높은 물가 상승률이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커서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달러/원 환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250원이 깨진 25일 "환율 움직임은 물론 수급주체별 동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구두개입에 나섰고 외환시장에서는 당국이 직접 외환시장에 참여하는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도 나선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달러 강세는 좀처럼 잡히지 않을 것이란 게 외환시장참가자들의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국제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300원선을 돌파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당장 금융시장 상황이 달러 강세에 우호적인데다가 우리나라 외환당국이 적극 나서기도 어려워서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으로 부터 환율 관찰대상국 명단에 올라와 있다. 미국이 섣부르게 최고 수준의 제재를 가하는 환율조작국으로 우리나라를 지정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당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달러가치 오르자 차익실현하는 '환테크족'
3월 들어 달러가치가 급상승하자 달러에 투자했던 '환테크' 족은 차익실현에 나서는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환율이 낮았을 당시 외화예금을 들었던 고객들이 이제는 이를 해지하고 원화로 바꾸는 것이다.
외화예금은 말 그대로 자기가 원하는 나라의 통화를 기준으로 예금을 하는 것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예금상품이기 때문에 이자와 함께 향후 만기가 도래할 경우 가입 시점보다 해외 통화의 가치가 높아졌다면 그만큼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3월 들어 달러 가치가 치솟기 시작하자 상대적으로 달러/원 환율이 낮았을 당시 달러예금에 가입했던 고객들이 이제는 이를 다시 현금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개인의 외화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175억3000만달러(22조1600억원)가량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말까지만 하더라도 187억7000만달러(23조7300억원)가 예치돼 있었지만 3개월 만에 12억4000만달러(1조5679억원)가 빠져나갔다.
한은 관계자는 "달러/원 환율이 올해 2월 중 1197.8원에서 3월 중으로는 1221.3원으로 23.5원 상승하자 개인의 현물환 매도가 확대된 영향으로 개인의 외화예금 잔액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은행 관계자 역시 "외화예금중에서는 달러예금 비중이 가장 높은데, 지난달부터 달러의 가치가 급하게 상승하기 시작하자 달러예금을 보유하고 있던 고객들이 차익실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연중 3월에 가장 많은 외화예금이 빠져나갔다" 라고 설명했다.
"틈을 노려라"…'엔화' 노리는 환테크족
통상 달러의 가치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외화예금의 인기는 시들어든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달러의 가치가 낮아지면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커서다. 원칙적으로 현재 우리나라 원화와 직접 거래가 가능한 통화는 달러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통화 예금의 경우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반면 최근 들어서는 달러 예금은 돈이 빠져나가는 대신 엔화 예금을 찾는 고객들이 많아졌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통상 달러의 가치가 오르면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유로화, 엔화의 가치도 동반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최근 들어서 엔화의 가치는 크게 낮아지고 있어서다.
실제 올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 원화 대비 100 엔의 가치는 1029.57원이었지만 지난 25일에는 980.79원까지 낮아졌다.
금융투자시장 관계자는 "엔화 약세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이에서 기인한다"며 "미국은 정책금리 인상에 나서며 본격적인 긴축에 나섰지만 일본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단기금리와 장기금리로 구분하는데 이 중 우리나라 기준금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단기금리는 2016년부터 -0.1%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긴축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이같은 금리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엔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오랜만에 엔화의 가치가 낮아지자 마땅한 투자처가 사라진 일부 자금이 엔화 예금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게 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은행 관계자는 "가장 인기있는 달러예금에 대해서는 수요가 낮아졌지만 최근들어 엔화 예금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최근 금융소비자들이 금융트렌드를 빠르게 쫓기 시작했고 엔저가 나타나자마자 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엔화 투자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은행 한 PB는 "엔화의 경우 앞으로도 지속적인 절하(가치하락)이 예상되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며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 조정에 대한 명확한 시그널을 보낼때까지는 계속해서 엔저가 지속될 것이고 이후 금리를 올리더라도 엔화의 상승폭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