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시스템 리스크는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 소비자들은 금리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올들어 은행 대출금리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와 달리 움직이면서 소비자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SVB 파산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 긴축 정책에도 변화 가능성이 생기면서 국내은행 대출금리에 영향을 줄지 관심이다.
연준·한은, 긴축 완화 가능성 커졌다
당초 미 연준은 통화긴축 정책에 고삐를 죌 것으로 예상됐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하원 청문회에서 "경제지표가 더 빠른 긴축을 정당화하면 우리는 금리 인상 폭을 높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긴축 강화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선 미 연준이 오는 22일로 예정된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빅스텝'(정책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SVB파산으로 정책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 연준의 통화긴축으로 SVB가 집중 투자했던 미국 국채 금리가 하락한 것이 이번 사태의 주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시장 관심이 집중됐던 미국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전망치에 부합했다.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보다 6% 오르며 작년 8월 이후 6개월 연속 상승폭을 줄여가고 있다. 연준 입장에선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한 발 멀어질 수 있게 된 셈이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면서 연준이 긴축강도 강화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FOMC에서 0.25%포인트 인상을 예상하고, 금융 불안 우려도 점차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한은 금통위도 통화정책에 다소 여유가 생겼다. 지난달 금통위에선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 미국과의 금리차가 벌어지면서 외환시장 불안이 확대된 바 있다. 현재 한미 금리차는 1.25%포인트(한 기준금리 3.5%, 미 정책금리 상단 4.75%)로 약 22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이에 더해 물가 역시 작년보다는 상승폭을 축소했지만 여전히 4% 후반대로 높아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던 상황이다.
미 연준이 베이비스텝에 그치며 통화긴축 정책에 속도를 조절할 경우 한은 금통위도 기준금리 인상 압박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
채권금리 하락, 은행 대출금리는
올들어 국내 은행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1월만 해도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대출금리는 하락세로 전환했다.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압박에 더해 채권 시장이 안정된 영향이 컸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정부 요청으로 발행을 자제했던 금융채(은행채) 발행도 원활해지면서 자금조달에 숨통이 트였고, 대출 금리 인하 여력이 생겼다. ▷관련기사: [갈팡질팡 금리]치솟던 은행 금리, 떨어지는 이유(2월1일)
반면 최근 들어선 들어선 반대 양상이 나타났다. 금통위는 금리를 동결했지만 미 연준이 통화긴축 정책을 강화할 것이란 전망에 채권 금리가 다시 올랐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SVB 파산이라는 변수는 국내 채권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의 통화긴축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에 국내 채권금리가 하향 안정화되는 등 변화가 감지된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14일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381%, 금융채 5년물과 1년물 금리도 각각 4.044%, 3.69%를 기록하며 하향세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는 고정형의 경우 4.54~5.94%, 변동형은 4.92~6.32%에 형성돼 있고 신용대출 금리는 5.3~6.9% 수준이다. 다음달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채권시장 안정도 장기화되면 대출금리는 좀 더 떨어질 여력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준의 통화정책으로 SVB사태가 촉발된 만큼 긴축 강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며 "이로 인해 금융채를 포함한 국내 채권시장도 안정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채 금리가 하락하면 은행 대출금리도 인하할 여력이 생긴다"라며 "이에 더해 차주 부담을 낮추기 위한 추가 인하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