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생활가전 중견기업 ‘쿠쿠(CUCKOO)’의 가업승계 과정에서 형제간 잡음은 없었다. 부친이 장남을 후계자로 못 박자 차남은 순순히 따랐다. 대가는 컸다. 장남에게 경영권이 주어진 대신 차남에게는 현금 1530억원이 떨어졌다. 딴살림을 차리고 나가는 데 밑천이 됐다.
본가 쿠쿠에 발길 끊은 차남 구본진
커리어에 관한 한, 쿠쿠 창업주 구자신(81) 회장의 차남 구본진(48)씨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옛 쿠쿠기전(2007년 10월 엔탑에 흡수합병) 기획실장을 거쳐 2008년 3월~2009년 11월 잠깐 엔탑 대표를 맡았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게 없다.
차남이 주로 비(非)주력 계열사에 적을 뒀다는 것은 부친이 일찌감치 장남을 핵심 계열사의 경영 전면에 배치, ‘장자(長子) 승계’ 퍼즐을 맞춰 나간 데 기인한다. 과거 쿠쿠전자(현 쿠쿠홀딩스) 비상무이사 명함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2014년 8월 상장을 계기로 버렸다.
2014년 이후로는 쿠쿠 핵심 3개 계열사 경영에는 일절 발을 들이지 않았다. 후계자인 형 구본학(52) 현 쿠쿠전자·쿠쿠홈시스 대표가 지주회사 쿠쿠홀딩스의 이사회 멤버(비상무이사)로까지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형에 가려 2세 경영자로서의 존재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을 뿐 재력으로 옮아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 홀딩스 지분이 18.4%다. 구 대표(42.36%)에 이어 2대주주다. 쿠쿠홈시스 또한 3대주주로서 7.18%를 가지고 있다. 지금 시세로 도합 1440억원어치다.
현금 1530억, 딴살림 ‘제니스’의 밑천
뿐만 아니다. ‘[거버넌스워치] 쿠쿠 ②편’에서 기술한 대로, 구본진씨 소유의 과거 밥솥 ‘쿠쿠’ 판매법인 쿠쿠홈시스 지분 47%는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지렛대가 됐다. 형(53%) 외의 지분이 전부 구본진씨 몫이었다.
2012년 11월 쿠쿠홈시스가 옛 쿠쿠전자에 흡수될 당시 구본진씨의 지분가치가 1490억원이다. 쿠쿠전자 주식이 단 한 주도 없었지만 합병을 계기로 29.4%의 지분을 확보했다. 형(33.1%)에 이어 2대주주로 올라섰다. 2003~2011년 매년 예외 없이 총 179억원의 배당금을 챙기고 난 뒤였다.
2014년 8월 쿠쿠전자가 증시에 상장했다. 당시 상장은 구 회장이 장남에게는 경영권을, 차남에게는 현금을 쥐어줌으로써 후계구도에 분명한 선을 긋기 위한 수단이었다. 쿠쿠전자는 상장공모때 신주 발행이 없었다. 전량 기존 주주의 지분 25%를 대상으로 한 구주매출이었다. 구본진씨 15%를 비롯해 계열 주주사 엔탑 9.5%, 자사주 0.5%다.
상장 이후 구 대표의 쿠쿠전자 지배력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지분 33.1%를 유지했다. 구본진씨는 14.4%로 떨어졌다. 대신에 현금 1530억원을 챙겼다.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쥐게 된 터라 분가(分家)하는 데에도 돈이 문제될 건 없었다. ‘제니스’(Zenith)가 무대다.
참고로 구본진씨 소유의 쿠쿠홀딩스 및 쿠쿠홈시스 지분은 과거 쿠쿠전자 공모 당시 매각하고 남은 지분 14.4%가 2018년 5월 쿠쿠전자의 기업분할과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쪼개진 뒤 단 한주도 처분하지 않고 온전히 보유 중인 지분이다. (☞ [거버넌스워치] 쿠쿠 ⑦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