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필수의약품 공급망 강화를 위해 약가 우대 제도를 확대키로 했으나 제약 업계에선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반쪽짜리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제약사 다수가 계열사를 통해 원료의약품(API)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현행 제도상 자회사나 계열사 생산에 대해선 '제약사의 직접 생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료 자체 생산 약가우대, 품목 범위·기간 대폭 확대
보건복지부가 오는 8월 약가 제도 개편안 시행에 돌입하면서 의약품의 국내 생산 기반 유지를 지원하기 위한 약가 우대 정책도 변화할 예정이다. 원료 자급화와 생산 기반 유지가 필요한 의약품에 대해 기존과 동일하게 약가를 최대 68% 수준으로 우대하되, 적용 기간과 대상 범위를 확대해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약가 우대 적용 범위와 기간을 동시에 확대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원료 직접생산 의약품 및 국산 원료 사용 국가필수의약품이라 하더라도 신규 건강보험 등재 품목에 한해서만 약가 우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미 건강보험에 등재돼 있는 기존 품목까지 우대 대상에 포함된다.
우대 기간도 대폭 늘어난다. 원료 직접생산 의약품의 경우 기존에는 신규 건강보험 등재 이후 기본 1년간만 약가 우대가 적용됐다. 하지만 개편안에서는 국산 원료 사용 국가필수의약품과 동일하게 최초 5년 우대 후 추가 5년 연장이 가능한 '5+5년' 체계를 적용받게 된다.
여기에 공급업체가 3개 이하인 경우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추가 연장도 가능해져 사실상 '5+5+α년' 수준의 장기 우대 체계로 확대된다. 또 직접 생산하는 항생주사제와 소아용 의약품도 새롭게 우대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계열사 통한 원료 생산은 자체 생산 인정 안돼
정부가 이번 약가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과 인도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원료의약품 공급망의 리스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국내 생산 기반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항생주사제나 소아용 의약품처럼 수익성이 낮고 생산업체가 적은 필수의약품은 공급 불안이 반복돼 왔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국내에서 생산된 원료를 사용한 완제의약품의 약가를 우대해 주는 파격적인 유인책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취지와 달리, 제약업계에서는 현행 '원료 직접 생산' 인정 기준이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핵심 한계라고 지적한다. 현행 제도상 자회사나 계열사가 원료를 생산하는 경우 '직접 생산'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룹 차원에서 자체 원료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어도 완제의약품 제조사가 직접 원료를 생산하지 않으면 약가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결국 정작 정부가 강조하는 원료 자급화와 공급망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기업들이 제도 밖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다수 제약사, 계열사 통해 원료 생산
실제 국내 제약업계는 완제의약품 제조사와 원료 생산 법인을 분리해 효율성을 높이는 '수직계열화' 구조가 일반적이다. 대표적으로 유한양행은 100% 자회사인 유한화학을 통해 원료의약품을 생산하고 있고, 종근당 그룹은 종근당바이오와 경보제약, 한미약품은 한미정밀화학을 통해 세파계 항생제 원료 등을 생산하고 있다.
대웅제약 역시 자회사 대웅바이오, 동아쏘시오그룹은 계열사 에스티팜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원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공급망 안정성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 원료 생산 체계를 구축해 왔다. 다만 원료의약품 공장은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만큼 안정적인 공장 가동률과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외부 제약사 대상 원료 위탁생산(CMO) 사업도 병행해야 한다.
완제의약품 사업과 다른 생산·품질관리 체계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원료 전문 계열사를 별도로 두고 그룹 차원에서 원료 생산 체계를 운영하는 방식이 업계 전반에 자리 잡은 이유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내세운 '원료 자급화'와 '공급망 안정'이라는 정책 취지를 고려하면, 계열사를 통한 원료 생산 역시 그룹 차원의 자체 생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국내 주요 제약사 상당수가 이미 계열사를 통해 원료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를 자체 생산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기업 입장에서도 추가적인 원료 자급화 투자나 생산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크지 않아 정부가 기대하는 공급망 안정 효과도 기대만큼 더 커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