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기존 승인 의약품의 새로운 적응증을 발굴하는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전략 확대에 나서면서 국내 업계 관심이 모아진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기존 허가 의약품을 재활용한 치료제 개발 시도가 잇따랐지만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FDA의 이번 움직임이 국내 보건당국의 지원 정책과 맞물리면 약물 재창출 개발 전략이 다시 확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발 기간 단축…FDA, 재창출 전략 확대
26일 업계에 따르면 FDA는 최근 기존 승인 의약품이나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치료 적응증(사용범위)을 찾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상업적 이유 등으로 개발이 중단됐던 의약품의 라벨 업데이트 가능성까지 논의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검토 대상은 △대사질환 △신경퇴행성질환 △여성·남성 건강질환 △약물 남용 장애 △희귀질환 등이다.
약물 재창출은 이미 시판 중이거나 개발 경험이 있는 약물을 다른 질환 치료제로 개발하는 전략이다. 일종의 약물 재활용이다. 기존 안전성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신약 개발 대비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상 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전임상, 임상 1·2·3상까지 평균 10~15년이 소요된다. 반면 약물 재창출은 안전성이 확인된 약물을 활용하는 만큼 임상 1상을 생략하거나 임상 2상부터 개발에 착수할 수 있어 개발 기간을 3~5년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키트루다, 적응증 40여개 확보하며 시장 규모 확대
대표적인 사례로는 MSD의 블록버스터 약물인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꼽힌다. 키트루다는 초기에 진행성 흑색종 등 일부 암종을 중심으로 사용됐지만, 이후 글로벌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소세포폐암, 위암, 담도암, 삼중음성유방암 등으로 적응증을 확대했다.
키트루다는 세계에서 약 40여개 적응증을 확보하면서 지난해 연간 매출 약 317억 달러(약 48조원)를 기록했다. 하나의 약물이 다양한 암종으로 적응증을 넓히며 시장 규모를 확장한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국내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약물 재창출 전략이 활발하게 활용됐다. 당시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약물 재창출 방식의 치료제 개발에 대해 임상 1상 시험을 면제하는 등 신속 개발을 지원했다.
이에 부광약품은 B형 간염 치료제 '레보비르', 신풍제약은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 일양약품은 급성백혈병 치료제 '슈펙트' 등 다수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자체 허가 품목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얻은 곳은 한 곳도 없다.
또 다른 사례로는 한미약품의 '에피노페그듀타이드'가 꼽힌다. 이 후보물질은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돼 글로벌 제약사 얀센에 기술 수출됐지만, 이후 반환 위기를 겪었다. 통상 기술 반환은 시장에서 부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개발 실패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여기서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방향을 틀었다. 당뇨병 대신 글로벌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비만 및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 시장으로 개발 방향을 변경한 것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작년 12월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해 현재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가 품목허가를 획득할 경우 국내 '약물 재창출'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도 지원하면 '재창출' 전략 확대 전망
약물 재창출 전략이 확대되는 배경으로는 신약 개발 난이도 상승을 꼽을 수 있다. 이미 주요 질환 영역에서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된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발굴하는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FDA가 검토 중인 약물 재창출 전략은 개발에 실패한 신약 후보물질 전반이 아니라, 이미 허가를 받아 안전성이 입증된 의약품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시판된 의약품은 인체 사용 경험과 임상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돼 있는 만큼 도중에 개발이 중단된 신약 물질보다 개발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측면에서 효율성이 더 높다.
업계는 FDA 트렌드에 맞춰 국내에서도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확대될 경우 약물 재창출 전략 활용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처럼 임상 절차 간소화나 신속 심사 체계가 마련될 경우, 비만·항암·희귀질환 등 시장성이 큰 분야를 중심으로 관련 개발 시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