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오는 8월부터 공급 중단 우려가 있는 필수의약품의 생산 유인을 높이기 위해 약가 기준을 최대 10% 인상하기로 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임시 처방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수의약품 상당수가 출시된 지 오래돼 약가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제조 원가 부담은 매년 늘어나면서 생산할수록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반복되는 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 약가 조정을 넘어 의약품 공급체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퇴장방지약 최대 10% 약가 인상 결정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항생제와 해열제, 소아용 의약품, 마취제, 수액제, 항암보조제 등 의료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들의 수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특정 약제를 제때 확보하지 못해 대체약 사용이 늘고 있으며, 처방 변경과 재고 관리 부담도 함께 커지는 상황이다.
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이 현실화되면서 보건복지부는 오는 8월부터 퇴장방지의약품 약가 기준을 인상하는 방안을 지난 14일 행정 예고했다. 이에 따라 퇴장방지의약품 신청을 제기할 수 있는 알약 형태의 내복제 상한금액은 기존 525원에서 578원, 피부에 바르는 외용제는 2800원에서 3080원, 주사제는 5257원에서 5783원 등으로 오른다.
국가필수의약품은 국민 생명과 건강에 필수적이라고 판단돼 국가가 안정적인 공급 필요성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의약품이다. 이 가운데 수요 감소와 낮은 약가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생산 중단 위험이 커지는 품목들을 정부가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해 약가 보전과 정책 지원 등을 통해 생산이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약가 인상과 함께 퇴장방지의약품 지정 체계도 정비할 예정이다. 기존에는 정해진 자료 제출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앞으로는 국가필수의약품의 경우 관련 단체 추천을 받아 수시로 퇴장방지의약품 지정 신청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늘어나는 원가 부담, 필수의약품 생산 기피
이같은 정부 조치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 약가 인상만으로는 생산 기반 약화를 막기 어렵고, 필수의약품을 둘러싼 수익 구조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수의약품과 퇴장방지의약품의 수급 불안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왜곡된 수익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지속적인 약가인하 정책으로 의약품 가격은 낮은 수준에 묶여 있는 반면 원료비와 인건비, 물류비는 꾸준히 상승하면서 생산을 유지할수록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다. 기업 입장에서는 필수의약품 생산 부담이 점차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올해 1분기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매출 상승에도 불구하고 원가율 부담이 전반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한양행의 올해 1분기 매출 대비 원가율은 71.6%로 전년 동기(69.8%) 대비 1.9%포인트 상승했다.
종근당 역시 지난해 1분기 69.2%에서 올 1분기 72.3%로 3.1%포인트 올랐다. 동아에스티와 대웅제약도 원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8%, 3.4%포인트 높아졌다.
근본적인 약가체계·공급망 개편 필요성 대두
제한된 생산능력과 비용 부담 속에서 기업들이 채산성이 높은 품목 위주로 생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 필수의약품 공급 기반은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이번 약가 인상 조치가 일정 부분 의미는 있지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원료비와 제조비 상승 폭이 이미 상당한 수준인 만큼 단순 약가 조정만으로는 생산 지속 여건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의 필수의약품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약가체계 개선과 국가 차원의 공급망 컨트롤타워 구축,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 원료의약품 국산화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공익적 책임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고 생산을 유지하는 품목이 적지 않은 만큼 생산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공급 불안은 반복될 것"이라며 "지속적인 원가 상승분을 반영할 수 있는 약가 체계와 장기 공급 계약 기반의 가격 보장 시스템 등이 함께 마련돼야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