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 제도 개편안과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가 자칫 환자 접근성 강화와 산업 육성이라는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복제약(제네릭) 약가 인하에 따른 연구개발(R&D) 재원 축소 우려를 비롯해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제도의 행정적 한계, 영업사원 개인 일탈까지 기업 책임으로 연결되는 인증 취소 규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제약업계의 장기 투자 환경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 운영과 함께 기업의 경영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약가인하, 채산성 악화 우려
법무법인 세종 김현욱 변호사는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신약 접근성 확대와 제약 혁신의 균형' 토론회에서 '정부의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 개편과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 개편안의 핵심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복제약(제네릭)의 가격 기준(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대폭 낮추는 것이다. 이와 맞물린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는 신약 개발 역량이 우수한 기업을 정부가 인증해 약가 우대와 세제 혜택을 주는 육성책이다.
김 변호사는 "제네릭과 개량신약은 국내 제약사가 신약 R&D를 지속할 수 있게 돕는 '연료'와 같은데 이를 45%까지 떨어뜨리면 기업들이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다"며 "제네릭의 안정적인 공급망 자체가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으로 약가 인하가 산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정부의 심도 있는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추진될 주기적 약가 평가나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 역시 산업계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면밀한 소통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희귀질환 신속등재 실효성 확보 필요
이번 약가제도 개편에는 정부가 최근 구체화한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 등재 트랙'이 포함돼 있다.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급여 등재 기간을 기존 240일에서 100일로 140일이나 대폭 단축하는 것이 골자다. 획기적인 기간 단축안이지만 김 변호사는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신속 급여화 대상 희귀질환을 질환의 중증도나 당장의 '생명 위협(Life-threatening)' 여부에만 지나치게 방점을 찍을 경우, 생명과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져 극심한 고통을 겪는 수많은 희귀질환 환자들이 정작 제도 혜택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행정 절차상의 엇박자도 문제 삼았다. 김 변호사는 "현재 희귀질환 지정 신청부터 최종 산정특례 적용까지는 약 2년이 소요된다"며 "등재 트랙 자체를 100일로 단축하더라도 앞단인 '질환 지정' 관문에서 시간이 다 흘러간다면 제도의 신속성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치료제의 가격이 워낙 비싼 만큼, 환자들의 '경제적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김 변호사는 "신속 등재로 약이 빨리 나와도 환자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면 소용없다"며 "현재 질병관리청이 운영하는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 사업에서 시대착오적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소득·재산 기준도 4대 혈우병 수준으로 완화하고 일원화해, 환자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장벽을 실질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오는 2028년 일반 혁신신약으로 신속 트랙을 확대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한 만큼,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희귀질환 시범사업 단계부터 대상 범위를 폭넓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영업사원 개인 일탈, 법인 책임 '과도'
이와 함께 리베이트 처분에 따른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취소 제도의 맹점도 짚었다. 정부는 이번 개선안을 통해 5년 이전의 리베이트 행위를 결격 사유에서 제외하기로 규제를 완화했다. 이는 행정기본법 등 전반적인 법 체계와의 정합성을 맞췄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조치로 평가받지만, 인증 취소 기준에는 여전히 독소조항이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제약사가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내부 준법감시(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ISO(국제표준화기구) 인증을 받는 등 직원 관리에 최선을 다했더라도, 영업사원 한 명의 '개인적 일탈'로 리베이트가 적발되면 법인 전체가 책임을 지고 식약처의 판매업무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문제는 이 행정처분이 곧바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취소'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김 변호사는 "형사 사건에서는 개인의 일탈로 명확히 판단될 경우 법인이 기소되지 않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는 사례도 있다"며 "그럼에도 약가 제도에서는 결과 책임만을 적용해 기업의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이 취소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신약 개발에는 통상 10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 필요한 만큼 경영의 예측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직원 한 명의 일탈 행위로 수년간 유지해온 혁신형 인증이 취소되고 약가 우대 혜택까지 박탈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R&D 투자와 신약 개발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기업이 고도화된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리베이트 방지 노력을 다한 것이 확인된다면, 취소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요소를 종합적으로 참작해 인증을 유지해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유연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