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바이오기업들이 내놓은 항체약물접합체(ADC) 연구개발(R&D) 전략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용어가 있는데요. '노블 타깃(novel target)'과 '노블 페이로드(novel paylaod)'입니다. 쉽게 말해 새로운 항암 표적과 새로운 약물을 발굴하겠다는 뜻이죠.
김용주 리가켐바이오 회장은 지난 8일 R&D 전략 발표 현장에서 "중국발 ADC 쓰나미가 오는 상황에서 우리가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노블 플랫폼 전략"이라며 노블 페이로드 기반의 파이프라인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도 지난 7일 기업설명회에서 "국내에서 ADC를 하는 기업은 모두 이중 페이로드나 노블 페이로드를 개발해야 한다"라고 말했고요.
이 같은 움직임은 ADC 시장의 성숙과 맞닿아 있습니다. 바이오기업들의 고객사인 빅파마들이 더 이상 기존 페이로드와 타깃만으로는 ADC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죠.
ADC는 조립품…항체·페이로드가 핵심
노블 타깃과 페이로드를 이해하려면 ADC(Antibody-Drug Conjugate)의 구조부터 짚어야 합니다. ADC는 세 가지 부품을 조립해 만드는데요. 표적을 찾아가는 '항체(Antibody)'와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페이로드·Drug)', 그리고 둘을 잇는 '링커'로 구성됩니다.
각각을 모으면 유도미사일에 비유됩니다. 항체는 표적을 찾아가는 유도장치, 페이로드는 암세포를 파괴하는 탄두, 링커는 둘을 붙잡아두는 결합부인 셈이죠.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 강한 약물을 쏟아붓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노블 타깃은 유도장치가 겨냥하는 새로운 표적을, 노블 페이로드는 새로운 탄두를 뜻합니다. 새 표적을 쫓으면 기존 ADC가 찾지 못하던 암세포까지 폭탄을 실어나를 수 있고, 새 탄두를 쓰면 기존 약물에 내성이 생긴 암세포도 다시 공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유도장치와 탄두, 양쪽 모두에서 '새로움'을 찾겠다는 것이죠.
빅파마들은 더 좋은 ADC를 만들기 위해 세계 바이오기업들로부터 이 부품 기술을 사들입니다. 완성차 업체가 하청업체로부터 부품을 사들여 자동차를 조립하듯, 빅파마는 항체·페이로드 기술을 확보해 ADC라는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바이오기업들이 노리는 지점도 바로 이 부품 시장입니다.
문제는 모두가 비슷한 부품을 쓴다는 데 있습니다. 인기 있는 타깃과 페이로드에 개발이 쏠리면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이미 성공한 ADC를 같은 재료로 넘어서기란 쉽지 않습니다. 같은 재료로 더 나은 레시피를 짜기보다 아예 새로운 재료로 새로운 레시피를 만드는 편이 수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 이유죠. 기업들이 저마다 '노블'을 외치는 배경입니다.
쏠리는 타깃…잡히지 않는 암이 남는다
빅파마가 노블 타깃과 노블 페이로드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시장에 나온 부품들이 대개 비슷한 표적, 비슷한 약물에 쏠려 있기 때문이죠. 먼저 타깃 쪽부터 보겠습니다.
유도장치인 항체는 암세포에서만 발현되는 특유의 '항원'에 결합합니다. 이 항원들을 '타깃'이라 부르는데요.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 많이 발현될수록 피아식별이 쉬워지는 좋은 타깃입니다. 블록버스터 ADC '엔허투'의 타깃인 'HER2'가 대표적이죠.
문제는 인기 있는 타깃에 개발이 쏠린다는 점입니다. 쏠림은 학회 발표만 봐도 드러나는데요. 올해 미국암연구학회(AACR)에 제출된 ADC 초록을 타깃별로 보면 HER2가 64건으로 가장 많았고, TROP2(33건)와 EGFR(29건)이 뒤를 이었습니다. 개발 파이프라인이 상위 세 타깃에만 몰린 셈이죠. 나머지 표적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서 10건 안팎에 그쳤고요.
같은 타깃을 겨냥한 약물이 쏟아지면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해당 표지가 없는 암세포는 애초에 공격 대상에서 빠진다는 점이죠. HER2가 없어 엔허투가 추적하지 못하는 암세포를 잡을 수 있다면 그만큼 새로운 기회가 열립니다. 기존 치료제가 접근하지 못하는 암을 겨냥하는 노블 타깃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탄두는 사실상 한 계열…유도장치만 바꿔선 어려워
탄두에 해당하는 페이로드의 쏠림은 더 심합니다. ADC에 탑재되는 약물은 세포 분열을 막는 '튜불린 저해제'와 DNA 복제를 방해하는 '토포아이소머라제1(TOPO1) 저해제'로 나뉘는데요. 이 중 대세는 TOPO1 저해제입니다.
표적을 발현하지 않는 인접 암세포까지 함께 죽이는 '바이스탠더 효과'가 강해 고형암에 특히 유용해서인데요. 블록버스터 '엔허투'를 비롯해 트로델비, 다트로웨이가 모두 여기 해당하고, 중국 기업들이 쏟아내는 후보물질 상당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이 TOPO1 계열의 뿌리가 하나라는 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페이로드로 쓰인 TOPO1 저해제는 모두 '캄토테신(CPT)' 한 갈래에서 나왔는데요. 엔허투와 트로델비는 타깃은 다르지만 두 가지 모두 CPT 계열의 TOPO1 저해제를 사용하고 있죠.
바로 여기서 문제가 불거집니다. 표적이 부족한 문제는 유도장치인 항체를 바꿔 다른 암을 겨냥하면 어느 정도 풀립니다. 하지만 탄두가 같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한 번 내성이 생긴 암세포는 항체를 바꿔 다른 암을 노려도 같은 탄두에는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항체뿐 아니라 탄두 자체를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겁니다.
리가켐·에이비엘·에임드…'노블'을 향해
리가켐바이오는 'non-CPT TOPO1' 페이로드를 차세대 핵심 기술로 내세웠습니다. 지금까지 승인된 TOPO1 저해제가 모두 캄토테신(CPT) 유도체 한 갈래에 뿌리를 둔다는 점에 착안해, 같은 TOPO1을 억제하되 화학 구조가 다른 물질을 개발하겠다는 전략이죠. 뿌리가 다르면 기존 CPT 계열의 내성·독성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노블 페이로드와 듀얼 페이로드를 동시에 밀고 있습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지난 7일 기업설명회(IR)에서 이 둘을 '차세대 ADC 전략'으로 제시하며 "현재 듀얼 페이로드 4개 조합을 찾아 평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에임드바이오도 새로운 표적 발굴에 진심입니다. 남들이 몰리는 검증된 표적을 뒤쫓는 전략은 택하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허남구 에임드바이오 대표는 지난 9일 바이오차이나 행사 발표에서 "에임드바이오는 계열 내 최초(first-in-class) 표적, 또는 경쟁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미충족 의료 수요와 과학적 근거가 강한 표적을 겨냥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초기 ADC 경쟁이 '어떤 항체를 쓰느냐'의 싸움이었다면, 무게추는 이제 '무엇을 새로 확보하느냐'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검증된 표적과 탄두라는 안전한 길 대신 새로운 영역을 먼저 선점하는 기업이, 포화된 ADC 시장의 다음 판을 쥐게 될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