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단 정례회의가 열린 지난 11일. 이날은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이 '일본 전자산업 동향'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최근 부활하고 있는 일본 전자산업의 현황을 듣고 미리 대비하자는 차원으로 마련된 자리다.
지금부터 10년전만 해도 삼성과 LG는 세계 TV시장에서 앞서가는 일본기업들을 추격하는 위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로 변했다. 세계 TV시장 1, 2위인 삼성과 LG는 전열을 재정비한 일본과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도전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10년전 한국 기업들이 선두를 추월했던 것처럼 자칫 급변하는 전자산업의 흐름을 놓칠 경우 시장의 판도는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 UHD TV 시대가 온다
과거 PDP와 LCD가 경쟁하던 초기를 지나 LED를 광원으로 탑재한 LCD TV, 그리고 3D TV와 스마트 기능이 강조된 제품을 거쳐 최근 세계 TV시장은 초고화질의 싸움으로 넘어가고 있다. 연초 미국에서 개최된 CES, 최근 열린 IFA 등의 전시회는 앞으로 TV시장의 경쟁이 초고화질(Ultra High Definition, UHD)을 놓고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UHD TV의 부상은 기존 평판 TV 시장의 정체와 맞물려 있다. PDP와 평판TV 주도권 경쟁에서 승리한 LCD TV는 이후 초박형 제품인 LED TV, 3D TV, 스마트 TV 등으로 진화해 왔지만 최근들어 초기만큼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평판TV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간 영향이 크다.
때문에 TV업체들은 새로운 TV수요 창출을 위해 대형화와 고화질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그 결과물이 UHD TV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스마트폰 활성화로 고화질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수요도 반영됐다.
또 LCD TV의 대안으로 여겨지던 OLED TV의 상용화가 상대적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점도 적지않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OLED TV는 대형화와 기술적 난제, 비싼 가격 등의 해결과제가 아직 남아있는 만큼 당분간 UHD TV가 고해상도 TV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UHD TV의 시장 전망은 긍정적이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는 올해 93만대 가량으로 예상되는 UHD TV 시장 규모가 내년에는 390만대, 2015년에는 687만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IFA 2013 전시회에서 삼성전자가 전시한 110형 UHD TV. 삼성은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
◇앞선 한국, 쫓는 일본·중국
최근 세계 TV시장을 주도한 삼성과 LG는 UHD 시장에서도 선두주자다. 최근 IFA에서도 삼성과 LG는 다양한 라인업의 제품을 전시하며 기술을 과시했다. 삼성전자는 110형의 초대형부터 65·55형의 제품들을 고르게 선보였다. LG전자 역시 84형부터 55형 제품군을 전시했다.
삼성과 LG는 UHD TV외에 대형 OLED TV와 곡면형 TV 등 첨단기술이 집약된 다양한 제품들을 내놨다. 적어도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은 삼성과 LG라는 평가가 나올만 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이 UHD와 OLED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놨다면 일본 기업들은 UHD TV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니와 파나소닉이 OLED TV 시제품을 내놓긴 했지만 주력은 역시 UHD TV였다.
소니의 경우 UHD TV와 함께 초고화질 영상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와 프로젝터, 핸디캠 등을 내놨다. TV 주변기기부터 콘텐츠를 아우르는 이른바 'UHD 생태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UHD 콘텐츠의 자급이 가능한 소니의 계획이 이뤄질 경우 한국에는 적지않은 위협이 될 전망이다.
▲ LG전자는 77형 곡면 올레드 UHD TV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
중국은 파격적인 가격의 제품들을 전시했다. 65형 제품의 경우 삼성이 800만원대 후반인 것에 반해 중국은 700만원대 초반으로 가격경쟁력에서 앞서는 상황이다. 대형제품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 일본과 달리 중국 창홍은 30형대 UHD 제품을 내놔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세계 TV시장에서 중국 TCL의 점유율은 4.9%, 하이센스는 4.6%를 기록했다. 일본 샤프의 점유율 5.4%를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2010년을 전후로 급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년전 삼성과 LG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6%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 수준을 무시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거대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내수시장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당분간 앞서가는 한국업체들과 이를 쫓는 일본, 중국 기업들이 UHD TV 시장의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삼성과 LG도 UHD TV의 가격을 인하하고, 중국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UHD TV시장에서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윤부근 삼성전자 CE부문 사장은 최근 "북미와 유럽 등 선진시장은 프리미엄 리더십을 강화하고, 신흥시장에서는 지역특화형 제품으로 대응하겠다"며 "2015년까지 10년 연속 1위를 차지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