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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 2인자 리더십]⑥SK 구자영 '혁신의 심장'

  • 2014.01.14(화) 08:07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조직 변화 이끄는 에너지사업 해결사

"과거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바탕으로 한 대기업의 패러다임 체계에서 기술 선도기업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도전정신, 창의성, 긍정적인 조직 문화로 과감히 변신해야 합니다."

 

2011년 2월, 구자영 당시 SK이노베이션 사장(현 부회장·65·사진)은 서울 서린동 SK본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회사의 변화 지향점을 설명했다. "도대체 왜 회사 이름이 업종도 모호한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이냐"고 하던 때다.

 

2007년 7월 ㈜SK가 지주회사인 SK주식회사와 사업회사인 SK에너지로 분리했고, 그 뒤 SK에너지가 다시 자회사들을 분사하며 SK이노베이션으로 이름을 바꾼 지 한달 남짓 되던 때였다.

 

구 부회장은 글로벌 석유회사인 엑슨모빌의 전략연구소에서 연구개발(R&D) 담당임원으로 재직하다가 2008년 SK에너지 P&T(Planning & Technology) 사장으로 말을 갈아탔다. 이듬해엔 SK에너지 대표이사에 오르며 SK에너지 변화의 중심에 섰다.

 

그가 엑슨모빌에서 마지막 맡은 직함은 '이노베이션 자문위원'이었고 공교롭게도 새 회사의 이름도 SK이노베이션이 됐다.

 

그가 맡았던 SK에너지는 내수기업 이미지가 강한 정유회사였다. 하지만 그는 취임 이후 정유, 화학, 윤활유 등 주요 사업을 모두 자회사로 떼어내 독립경영체제로 바꿨다. 그리고 본체는 SK이노베이션으로 이름을 바꿔 '기술 기반의 글로벌 에너지기업'이라는 정체성을 심었다.

 

새로 태어난 SK이노베이션은 석유제품 수출 및 석유개발과 함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정보전자(IT) 소재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도 넓혔다.

 

구 부회장은 엑슨모빌에서 쌓은 노하우로 굵직한 글로벌 사업도 잇따라 성공시켰다. 2011년 7월 덴마크 머스크오일에 브라질 광구를 24억달러(약 2조6000억원)에 매각한 것이 대표적. 당시 그는 뉴욕으로 직접 날아가 상대방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매각에 성공했으며, 이를 계기로 글로벌 석유개발 업체들 뇌리에 SK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SK이노베이션은 그의 글로벌 전략과 함께 2009년 17조원였던 해외판매를 2012년 37조원으로 두 배 이상 늘렸고 매출에서 차지하는 해외판매 비중도 36%에서 51%로 높였다. 작년 초 그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수펙스 추구협의회 글로벌 성장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구 부회장은 자신에게는 철두철미하지만 평소 업무스타일은 자유분방하고 직원들과도 격의없이 어울린다. 특히 직원들에게는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보고서는 한장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프레젠테이션을 만들 시간에 더 생산적인 핵심적 사고를 하는 것이 낫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업무에서 불필요한 형식주의를 깨라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또 "실적과 근무시간은 아무 관계가 없다"며 작년 7월부터 야근을 없앤 '초과근무 제로(Zero)' 정책을 펴고 있다. 매일 오후 6시면 퇴근 독려 방송이 나오고 7시가 넘으면 냉난방이 끊긴다. 야근을 하려면 따로 신고를 해야 하고, 초과근무가 많으면 고과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구 부회장은 특히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도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임원 평가시 해당부서 직원들이 어느 정도 행복을 느끼고 있는지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전언이다. 

 

■ 구자영 부회장의 이색 이력

 

구자영 부회장은 그룹의 1인자인 오너 회장를 보필하면서 승진한 부회장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는 미국 러트거스뉴저지주립대 공대에서 교수로 재직한(1978~1982) 학자 출신이다. 미국에서 출원한 특허가 33건, 발표한 논문은 56편에 이른다.

 

엑슨모빌을 거친 그는 SK그룹 에너지사업의 변화라는 '특명'을 받고 전문가로 영입된 케이스다.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그를 발탁해 1988년부터 1993년까지 포스코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 최근에는 차기 포스코 회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SK에 들어온 뒤 2010년부터는 그룹의 축구단인 제주 유나이티드 FC 구단주도 맡고 있는데 학창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했던 경력도 이채롭다. 그는 사보에 기고한 글에서 "배가 고파 축구를 시작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 정식 축구선수가 됐다"며 "가난 때문에 축구를 시작했고 또 접어야 했지만 축구를 통해 인내력과 극기력를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와 함께 축구 경험을 살린 경영론도 제시했다. "펠레가 '축구 황제'로 추앙받는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해 필드 위 22명의 위치를 한눈에 꿰뚫어 보고, 움직임과 패스를 정확하게 예측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라며 "기업 경영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1972년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30여년을 해외에서 생활한 그는 나이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해외통'이라는 별명답게 최태원 SK 회장의 부재 속에서도 그룹의 글로벌 경영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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