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에서 단일 계약 규모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수주를 성사시켰다. 오랜 기간 러시아에 공을 들인 결과다.
대우조선이 캐나다와 일본의 LNG 운영선사로부터 총 9척의 170K급 아크7(Arc7) 쇄빙LNG선을 수주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캐나다의 TK와 중국의 CLNG 합작사인 TK&CLNG가 6척을, 일본의 MOL과 중국의 CSLNG 합작사인 MOL&CSLNG 3척을 발주했다.
이들 선사는 러시아 '야말LNG'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여기서 생산되는 LNG를 북극항로를 통해 운반한다. 대우조선이 수주한 쇄빙LNG선은 이들 선사들에 의해 운용된다.
총 계약 규모는 28억달러 선으로 척당 가격은 3억16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조원 규모다. 대우조선은 이번 수주로 올해 목표 수주액의 30%를 한번에 올릴 수 있게 됐다.
특히 대우조선이 이번에 수주한 선박은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쇄빙LNG선이다. LNG선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LNG는 보관 및 운반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이번 선박은 LNG선 기술과 쇄빙선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쇄빙 방식도 종전과 다르다. 기존의 쇄빙선은 선박이 얼음 위로 타고 올라가 선박의 무게로 얼음을 부수는 방식이다. 하지만 대우조선이 건조할 쇄빙LNG선은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얼음을 직접 깨며 운항한다. 두께 2.1m의 얼음도 뚫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선체는 30∼40mm 두께의 초고강도 강판으로 제작된다. 얼음과 직접 부딪치는 부분은 일반 선박보다 20mm 가량 두꺼운 70mm 강판이 사용된다. 극지에서 운용되는 만큼 영하 52도에서도 모든 장비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 사전준비가 성공의 반
대우조선은 오래 전부터 러시아 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러시아는 풍부한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음에도 불구 여타 지역에 비해 관심을 덜 받았던 지역이다. 따라서 미래를 대비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대우조선은 러시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지난 2009년에는 러시아 정부와 러시아 조선소 현대화를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작년에는 러시아 정부에서 추진하는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즈베즈다 조선소의 현대화 사업에도 참여했다.
이 모든 작업이 러시아 시장 선점을 위한 포석이었다. 대우조선은 또 러시아에 극지가 많다는 점을 눈여겨 봤다. 대우조선은 북극에 대한 연구도 병행했다. 대우조선은 지난 2008년부터 북극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번에 수주한 쇄빙LNG선도 이런 연구의 산물이다.

▲ 대우조선해양은 오래 전부터 러시아 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를 진행해왔다. 러시아 정부와 함께 러시아 현지 조선소 현대화 작업에 참여하는 등 러시아 측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 극지가 많은 러시아의 상황을 고려 북극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왔다. 그 결과, 이번 수주와 같은 대형 계약 건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
대우조선의 쇄빙LNG선은 러시아 야말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 야말반도에서 천연가스를 채취해 생산·수출하는 프로젝트다. 야말에는 천연가스 1조2500억㎥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1650만톤씩 생산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기업 노바테크, 프랑스 토탈,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 등이 공동 설립한 ‘야말LNG’가 담당한다. 야말LNG는 이 사업에 최대 약 20조24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쇄빙LNG선 15척이 필요하다. 대우조선은 이미 지난 3월 1척을 수주한 데 이어 이번 9척 수주로 총 10척을 수주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나머지 5척도 대우조선이 수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상대방의 마음을 사라
대우조선은 이번 수주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지난 2012년부터 진행된 입찰에 국내외 조선업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발주 금액 자체가 크다는 것은 매력적이었지만 러시아라는 리스크도 존재했다.
러시아는 정부의 입김이 강한 나라다. 대형 프로젝트가 계획됐다가도 정부가 마음을 바꾸면 금세 백지화된다. 지난 2011년 러시아 최대 국영기업 가즈프롬이 추진하던 20억 달러 규모의 ‘시토크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발주처가 러시아,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여러나라로 구성돼 이해관계도 제각각이었다. 그만큼 요구사항도 많았다. 대우조선은 이를 맞추기 위해 30여 차례의 회의를 진행하며 프로젝트 수주에 만전을 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8일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 타케시 하시모토 (Takeshi Hashimoto) MOL社 상무(맨 오른쪽), 리우 시한 (Liu Xihan) CSLNG社 부총경리(맨 왼쪽)가 쇄빙LNG선 건조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
실제로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직접 나서 이번 프로젝트 수주를 진두지휘했다. 고 사장은 "전세계 천연가스의 30%, 석유의 13%가 매장된 북극 지역은 향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라며 "극지용 선박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이번 수주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오랜 기간 러시아에 공을 들인 것은 이런 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사전 준비였다"며 "러시아 관련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러시아 정부와의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