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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 승계]⑧외국기업에서 배운다

  • 2015.01.22(목) 09:49

가족기업 승계 모범 스웨덴 발렌베리家
후계자 경영능력 검증 절차 필요

한국 대기업들이 안팎으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각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 온 창업주와 2세들의 퇴진이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이제 3·4세들로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경영권 승계이후 기업의 명암이 엇갈린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창업주나 2세와 달리 이들로의 지배구조 변화는 기업의 또 다른 흥망성쇠를 예고하고 있다. 국내 주요그룹 오너 3·4세들 경영참여 현황과 과거 사례, 바람직한 지배구조, 해외사례 등을 정리해본다. [편집자]

 

 

미국 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가족기업에서 일한다. 이들 가족기업이 미국 경제의 주축이자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있어서다.

 

삼성가(家) 현대가 LG가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도 넓게보면 가족기업에 속한다. 삼성그룹의 국내 임직원 수만 20만명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15만명, LG그룹은 14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임직원들의 가족을 포함하면 이들 가족기업이 국민 대다수를 먹여살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후계 승계는 단순히 해당 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후계자의 경영 능력에 따라 회사의 존망이 결정된다면, 직원들은 물론 그 가족들의 운명도 후계자의 능력에 달려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후계 문제는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기 십상이다.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탄 받은 이유도, 많은 직장인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국의 가족기업은 어떤 절차와 방식을 거쳐 기업의 명맥을 이어갈까.

 

우선 대다수 가족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일체화 돼 있다.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대를 이어가면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도 있다. 기업 소유권을 물려받은 후계자는 이사회를 통해 전문경영인(CEO)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구조다. 오너일가와 전문경영인이 능력에 따라 최고경영자를 맡는 곳도 있다. 

 

◇ 발렌베리 : 소유와 경영 분리

 

스웨덴 GDP의 30%를 차지하고 14개 대기업을 거느린 발렌베리 가문은 가업 승계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발렌베리 그룹은 안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1856년 근대 은행인 스칸디나비아 엔스킬다 은행(SEB)을 설립한데서 시작됐다. 안드레는 제조업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혔고, SEB가 대출해준 기업들 중 재무적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을 파산 처리하는 대신 대출금을 출자 전환하는 방식으로 계열사로 편입했다. 인수·합병(M&A)을 통해서도 계열사를 늘렸다.

 

발렌베리는 1916년 지주회사인 인베스터(Investor AB)를 설립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했다. 이와 함께 ‘차등의결권’ 제도를 통해 소유권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발렌베리 가문의 재단이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가 보유하고 있는 기업 지분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대주주 역할을 하면서 기업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차등의결권 때문이다.

 

스웨덴에선 기업 주식을 A와 B로 나눌 수 있다. A주 1주는 B주 10주와 같은 의결권을 갖게 된다. 즉 A주를 갖고 있으면 실제 지분율은 낮지만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훨씬 커진다. 발렌베리 재단이 갖고 있는 인베스터 지분은 18.7%에 불과하지만 차등의결권을 적용하면 의결권은 40.2%로 급증한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스웨덴 정부가 복지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도입했다. 차등의결권으로 자본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안정적인 경영권을 보장하는 대신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이끌어내고 세금도 더 걷기로 한 것이다.(살트셰바덴 협약)

 

발렌베리 가문은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통해 계열사를 지배한다.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전적으로 책임진다.

 

전문경영인들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지주사 회장은 발렌베리 가문에서 맡는다. 이른바 후계자다. 벨렌베리 가문은 후계자끼리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2명의 후계자를 뽑는데 한명은 지주사 회장을 맡고 다른 한명은 SEB 회장을 맡는다.

 

후계자는 친족 간의 경쟁을 통해 정해지는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고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나와야 하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야만 자격요건이 있다.

 

발렌베리 가문의 보유 지분에 따른 배당금은 모두 재단에 귀속되고, 재단은 수익금 대부분을 교육이나 연구 등 공익을 위해 사용한다. 발렌베리 가문의 계열사들이 성장해 이익이 늘어나면 그 만큼 국가 공익을 위해 투자될 수 있는 비용이 커진다. 발렌베리가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다.

 

◇ 도요타 : 오너·전문경영인 혼합

 

일본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수 가족기업이 있다. 100년(5만 여개)은 기본이고 200년 이상 된 기업도 3100개나 된다. 1000년이 넘는 기업도 19개가 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인 일본의 도요타(1937년 창업)도 대표적인 가족기업이다. 도요타 역시 오너 일가가 사업을 승계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은 다르다. 오너일가 뿐 아니라 전문경영인도 CEO가 될 수 있다. 도요타는 창업 이후 11명의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했는데, 이 중 오너 일가가 6명, 전문경영인이 5명이었다.

 

특히 CEO가 되는 과정과 기간 등에서 오너 일가라고 특혜를 주지 않는다. 오너 일가도 경영능력이 검증돼야 CEO를 맡을 수 있다.

 

도요타 가문은 과거 책임있고 미래지향적인 경영을 통해 사원들에게 인정 받았다. 1950년 경영악화로 직원들 1500명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창업자 도요타 기이치로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장직에서 물러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도요타 가문은 사원들로부터 회사 내 권력을 위임받았다. 오너 일가가 CEO가 되지 않더라도 사내에 있을 만한 파벌 다툼을 막고, 사원의 구심력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다.

 

업계에선 닛산이 1980년대 후반부터 도쿄대 출신의 파벌싸움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것에 반해 도요타는 이같은 파벌싸움과 노조의 파업 없이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점을 도요타 일가의 영향력으로 평가하고 있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kym5380@

 

◇ 공감할 수 있는 후계자 선정 필요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인물을 후계자로 만드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배구조나 승계구도가 안정적으로 갖춰져야 기업의 영속적인 성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영호 한국가족기업경영연구소장은 "발렌베리 가문처럼 후계자가 갖춰야할 조건과 경영철학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후계자를 결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승계 후보자들도 일반 직원과 마찬가지로 진급절차를 밟고 경영능력도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가족기업의 특성상 오너일가의 빠른 승진 등 특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하지만 후계자 선정은 회사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인정할 수 있는,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소유권과 관련해선 경영 독점권이 담보되는 높은 지분율을 포기하고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년 말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실패가 좋은 사례다. 시장에 비전을 제시해 주주들이 납득해야만 지배구조 재편도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남 소장은 "우리나라도 스웨덴과 같은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차등의결권은 재벌의 승계과정 뿐 아니라 창업 가족기업이 성장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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