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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매수권의 비밀]①잘쓰면 약 잘못쓰면 독

  • 2015.08.19(수) 15:28

우선매수청구권 부여기준 불명확
경영권 보호 vs 도덕적 해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존 경영자에게 부여하는 우선매수청구권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경영자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부실 경영인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는 부정적 측면도 있어서다. 우선매수청구권 도입 취지와 오남용 사례, 개선책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우선매수청구권은 채권단이 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 기존 경영자에게 회사 주식을 우선적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줌으로써 일시적 어려움에 처한 경영자들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우선매수청구권(Right of First Refusal)의 사전적 정의는 '주식을 양도하려는 주주가 외부인이 제시하는 조건대로 먼저 회사나 기존 주주에게 자신의 주식을 매수할 권리를 주고, 회사나 기존 주주가 매수를 거절할 경우 또 다른 외부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2003년에 은행연합회 여신전문위원회가 ‘채권금융기관 출자전환주식 관리 및 매각준칙’에 우선매수청구권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면서 도입됐다.

 

2005년에 ‘부실 책임이 있는 구(舊)사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하되, 부실책임의 정도 및 사재출연 등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사후 평가를 통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문제는 '매각준칙'에 구속력이 없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기준이 그때 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매수청구권은 민법상 소유권(물건을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완전물권)이 아닌 제한물권(물건에 대한 사용가치 혹은 교환가치만을 제한적으로 지배)의 형태로 워크아웃(기업개선절차) 중인 기업의 기존 경영자와 채권단 간 양자계약 형태로 부여된다.

 

런 이유로 우선매수청구권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기업을 위기에 빠뜨렸던 오너가 다시 경영권을 가져가는 것에 대한 특혜 시비와 도덕적 해이 논란이 뒤따르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너의 무리한 경영으로 부실해진 기업을 되살린 후 다시 예전 오너에게 넘기는 것은 넌센스"라며 "법적 금전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 벌을 주지 않고 상을 주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선매수청구권은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기도 한다. 우선매수청구권을 통해 기술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투기자본으로부터 지켜낸 경우도 있지만 되찾아준 기업이 부실을 털어내지 못하고 끝내 파산한 사례도 있다.

 

외환위기 때 법원에 화의를 신청하며 어려움에 처했던 삼양식품(삼양라면)은 우선매수청구권을 통해 기업을 지켜낸 경우다.

 

지난 2005년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주채권단인 신한은행과 신한캐피탈이 삼양식품 구조조정 과정에서 출자전환으로 취득한 주식 중 35%를 매입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받았다.

 

당시 신한은행은 정부로부터 기업회생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삼양식품의 경영 정상화를 적극 지원했고, 삼양식품 역시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삼양식품은 재무구조가 개선됐고 전 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을 사용해 지분을 되사올 수 있었다. 

 

▲ 기업 구조조정 과정 속 우선매수청구권으로 경영권 확보한 사례
 
벽산건설은 우선매수청구권을 통해 경영권을 회복했지만 끝내 파산한 경우다. 벽산건설 채권단은 지분 51%를 김희철 회장과 특수관계인에게 매각할 계획이었다. 김희철 회장과 특수관계 회사(벽산건설, 인희, 벽산, 동양물산, 벽산페인트)는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었고, 김 회장이 채권단의 주식을 주당 4050원에 매수하겠다고 1차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특혜 시비로 매각 계획이 무산됐고, 채권단과 재협상을 통해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계열사 ㈜인희가 채권단 지분 51%를 인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계열사가 벽산건설 주식을 되사면서 오너일가가 경영권을 되찾았지만 부실경영이 이어지면서 법정관리 후 최종 파산하고 만다.

 

■ 우선매수청구권 확보로 되찾아온 기업

 

지난 2008년 한라건설(현 ㈜한라)은 센세이지(Sunsage)가 갖고 있던 만도의 지분 전량을 인수하며 만도를 되찾아왔다. 센세이지는 1999년 만도 지분을 매입할 때 향후 50% 이상의 지분을 매각할 경우 한라건설에 우선매수권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세계 최고 사모펀드인 KKR을 비롯해 TRW(사모펀드) 등이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결국 범 현대가의 도움을 받은 한라건설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며 만도 지분 72.4%를 6515억원 인수하는데 성공한다.

 

▲ 지분 매각 시, 우선 매수청구권 확보로 다시 찾아온 기업 사례
 
현대중공업도 우선매수권을 통해 현대오일뱅크를 되찾을 수 있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IPIC(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는 오일뱅크의 지분 50%를 인수했는데, 당시 매각 조건으로 향후 IPIC가 오일뱅크 지분을 팔때 현대중공업에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IPIC는 오일뱅크 지분을 제3자에게 팔려고 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싱가포르 국제중재법원(ICC) 국제중재재판소에 법적분쟁 중재를 신청해 승소했다. 이후 국내 법원에서도 우선매수권을 인정 받으며 IPIC가 갖고 있던 현대오일뱅크 지분 전량을 2조5734억원에 인수해 기업을 되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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