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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매수권의 비밀]②채권단엔 '양날의 칼'

  • 2015.08.20(목) 17:07

우선매수권 미리 보장해 협상 주도권 상실
동부제철·STX조선해양 때는 엄격히 적용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존 경영자에게 부여하는 우선매수청구권이 논란이다.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경영자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부실 기업인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는 부정적 측면도 있어서다. 우선매수청구권 도입 취지와 오남용 사례, 개선책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은 기업 입장에서 '양날의 칼'이다. 

 

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회생 자금을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반대급부로 경영상 중요한 결정은 채권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기업의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채권단이 빌려준 돈을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하게되면 지분도 금융기관으로 넘어간다.

 

원칙상 채권단은 이 주식을 대출 이자 이상을 보탠 가격에 팔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한번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히면 워크아웃을 졸업한다고 해도 제값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는 워크아웃 조기 졸업, 채권단으로서는 빠른 채권 회수를 위해 과거 경영상 과오를 저지른 기존 사주를 경영에 참여시키고 채권단 지분을 옛 사주가 되살수 있도록 기존 오너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채권단에게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워크아웃을 빨리 마칠 수는 있지만 섣불리 부여한 우선매수청구권 때문에 지분을 적정 가격 이하로 팔게 되면 채권단 입장에서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채권단과 박삼구 회장이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는 금호산업이다.

 

현재 금호산업 채권단은 금호산업 주식(50%+1주)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1조원 수준을 받겠다고 나섰지만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박삼구 회장은 6000억원 안팎의 가격을 고수하며 맞서고 있다.

 

상황은 박 회장 쪽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4월 금호산업 지분 매각 본입찰 때 채권단 희망가격보다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호반건설 6007억)이 제시됐고, 그 뒤 금호산업의 실적 및 주가도 곤두박질 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 잘못 꿴 첫 단추

 

채권금융기관 출자전환주식 관리 및 매각준칙 12조에는 '부실책임이 있는 구(舊)사주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주식 매각시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부실책임의 정도 및 사재출연 등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사후평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금호산업의 경우 채권단이 박삼구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기 이전에 박 회장의 기여분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절차가 생략됐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너무 일찍, 섣불리 우선매수청구권을 줬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금호산업 채권단과 지배주주(박삼구·박세창)가 워크아웃이 시작(2010년 2월)될 때 합의를 통해 박 회장의 우선매수권을 보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양측이 합의서를 통해 '지배주주의 경영으로 금호산업 경영정상화 계획이 성공적으로 달성되면 채권단이 지배주주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채권단은 워크아웃 기간에도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박 회장은 2010년 말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 복귀하며 사실상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박삼구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 받은 것은 2013년이지만 실제로는 워크아웃 초기부터 경영권 및 우선매수권을 보장 받은 것"이라며 “이에 반해 STX와 동부그룹 등은 경영권을 박탈당했고, 우선매수권도 보장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 STX·동부제철의 경우

 

채권단은 구조조정에 앞서 기존 지배주주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받는다. 채권 확보를 위해서다. 이 때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주식은 담보로 받아 주지 않는 게 상례다.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해당 기업의 주식은 감자되고, 지배주주의 주식은 대부분 소멸되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은행은 지난해 동부제철 워크아웃의 조건으로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 13.29%를 요구했다. 동부그룹에서 동부화재가 가장 탄탄한 기업이어서 담보가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준기 회장이 이를 거부했고, 산업은행은 동부제철 주식을 100대1로 감자해 김 회장의 동부제철 경영권을 박탈했다.

 

강덕수 전 STX 회장의 경우 역시 STX조선해양 회생과 관련해 채권단으로부터 경영권이나 우선매수청구권 등을 부여받지 못했다. 사재출연 등 유의미한 기업회생 노력이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 우선매수청구권 확보 실패 사례와 금호산업 사례

 

반면 금호산업 채권단은 금호산업 회생에 투입될 지원자금에 대한 담보로 구조조정에 돌입한 금호산업의 지배주주(박삼구·박세창) 지분(약 10%)을 받았다. 박삼구 회장은 채권단으로부터 금호산업에 대한 경영권도 보장받았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 관계자는 "당시 금호산업 지배주주가 제공한 담보는 문제가 없었으며 기존 지배주주가 경영하는 것이 워크아웃을 빨리 졸업할 수 있다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채권단은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권 부여를 확정한 이유로 박 회장이 2012년 22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금호산업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유상증자에 참여한 건 지분 확보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또 4조9641억원에 달하는 채권단의 지원 규모(출자전환 3조1340억원, 신규여신 1조8301억원)에 비해 박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자의 사재출연은 39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는 점도 "사재출연으로서 의미를 둘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워크아웃 중인 기업의 경영자는 자신의 지분을 늘리거나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행위 등을 해선 안 된다”며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기업회생을 위한 사재출연이 아닌 지분확보를 위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유상증자 후 감자를 단행해도 주주의 지분율은 변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의 경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을 인정해 우선매수권을 부여한 것"이라며 "강덕수 회장은 사재출연도 없었고, 이후 횡령 및 배임혐의로 구속된 만큼 경영권이나 우선매수권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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