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엄마이자 대학교수인 김상은 씨는 마음이 바쁘다. 오전은 거의 강의 스케줄이 잡혀있다. 하교하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오후 강의는 되도록이면 잡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전체 교수 워크숍에 참석해야 한다. 장소는 강원도 속초다. 여느 때와 달리 귀가하는 아이들을 직접 받을 수가 없다. 하지만 큰 걱정은 없다. 운전하는 내내 아이들의 상태를 살필 수 있어서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집 대문을 열자 차량 모니터에 아이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냉장고에 간식 챙겨뒀으니 챙겨 먹고". 모니터 건너편으로 아이들이 환히 웃으며 "네" 한다. 운전하는 동안 김 교수가 핸들을 잡을 일은 없다. 목적지까지 자동차가 알아서 운행한다. 그 덕에 조수석에 앉은 동료 교수와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하며 담소를 나눈다.
남편이 귀가했다. 모니터에 남편이 약속대로 일찍 왔다며 손을 흔든다. 아이들과 남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김 교수는 웃으며 모니터에서 홈네트워킹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는 오븐을 켠다. "여보, 지금 오븐 켰으니 15분 뒤에 꺼내서 드세요. 당신이랑 애들 좋아하는 피자 구워뒀어요". 남편이 윙크로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차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지금은 2025년이다.

◇ 꿈이 현실로
자동차는 현대인들에게 필수 도구다. 과거의 자동차는 단순한 '운송'의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생활'의 개념으로 진화했다. 현대인들은 자동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좀 더 편하고 효율적인 자동차를 찾는다. 최근 자동차 업체들이 차량에 각종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CES와 같은 국제 가전 박람회에 자동차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전자업체들과 자동차 업체들 뿐만 아니라 IT업체들까지 협업을 통해 좀 더 지능적이고 운전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차량 개발에 나서고 있다. 구글과 애플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구글은 지난 2014년 이미 ‘OAA(Open Automotive Alliance)’를 조직했다. OAA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자동차를 결합한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개발이 목적이다. IT업체 및 자동차 업체들과 결성한 글로벌 '커넥티드 카 개발 연합'인 셈이다. 현재 OAA에는 GM, 볼보, 폭스바겐, 파나소닉, 엔비디아(NVIDIA), 쌍용차 등이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 글로벌 자동차 업계와 IT업계는 현재 '커넥티드 카'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는 시작 단계로 인포테인먼트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몇년 안에 자동차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사진 제공=현대·기아차) |
그렇다면 '커넥티드 카'란 무엇일까. '커넥티드 카'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차량이나 도로망과 무선으로 연결돼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무선통신을 기본 바탕으로 주변의 모든 정보와 '연결된' 차량이다. 자동차가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가 된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운전자는 이 컴퓨터를 제어하는 주체가 되는 개념이다.
'커넥티드 카'는 초기 단계다. 현재는 인포테인먼트가 주된 기능이다. 구글과 애플이 주도하고 있다. 구글은 차량과 스마트폰을 연결해주는 소프트웨어인 ‘안드로이드 오토’를, 애플은 ‘카플레이’를 개발했다. 운전자는 이를 통해 음악 감상, 문자메시지 보내기, 지도 활용,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약 150만대의 차량이 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있다.
업체들이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커넥티드 카'의 완성형은 기본적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동차 스스로 도로 정보를 감지해 운전자에게 알려주고 운전자가 운전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자율주행차의 개념까지도 포괄한다. '커넥티드 카'는 과거 공상소설 책에서 봐왔던 미래의 자동차 바로 그것이다.
◇ 불 붙은 '커넥티드 카' 개발 경쟁
'커넥티드 카'는 자동차 업체들과 IT업체들간의 전쟁이다. 누가 먼저 획기적인 시스템을 개발하느냐에 사활이 걸렸다. 글로벌 기업들이 '커넥티드 카' 개발에 전력투구 하는 것은 '커넥티드 카'가 사용자 편의를 높여주는 차량을 넘어서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커넥티드 카' 시장은 갈수록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전문 조사기관인 BI Intelligence는 전 세계 '커넥티드 카' 시장은 올해 1500만대에서 오는 2020년 6900만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시장 조사기관인 가트너도 2020년에는 2억5000만대 이상의 차량이 무선으로 연결될 것으로 봤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 4대 중 3대가 '커넥티드 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완전한 '커넥티드 카'로 가기 위한 단계인 '자율주행차' 개발 열기도 뜨겁다. 운전자가 운전대에 손을 대지 않아도 도로 및 주변 정보, 교통 정보 등을 스스로 인식해 최적의 상태로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자율주행차는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화두다. 이에 따라 각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율주행차 기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자동차 업체별 자율주행기술 확보 수준(자료:Navigant Research) |
시장 조사업체인 내비건트 리서치(Navigant Research)에 따르면 현재 다임러, 아우디, BMW, GM 등이 자율주행차 기술에 있어 리더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어 볼보, 포드, 도요타, 혼다, 폭스바겐, 닛산 등이 경쟁자 그룹에 속해있다. 현대·기아차도 경쟁자 그룹에는 속하지만 순위는 하위권으로 분류됐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자율주행차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커넥티드 카' 시장은 가장 광활한 미개척지"라며 "전세계 자동차 업체들과 IT업체들이 너나할 것 없이 뛰어드는 것은 기존 산업들이 대부분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넥티드 카' 시장은 잠재력은 물론 향후 폭발력도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커넥티드 카'가 여는 새로운 세상
스마트폰은 불과 10여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세상을 바꿨다. 발상의 전환과 기술력이 '연결'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연 셈이다. 이제는 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커넥티드 카'를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부른다. 자동차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스마트폰이 돼 우리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GM의 경우 ‘OnStar’라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 긴급구조요청시스템(e-call), 원격 차량 진단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차량 도난 신고시에는 GPS를 활용해 엔진 출력을 줄이고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제어 시스템도 탑재했다. OnStar는 통신사와 연계한 유료서비스로 2015년 7월 현재 약 770만명이 이용 중이다.
볼보는 전방의 차량이 도로 주행 중에 장애물이나 지형의 위험을 감지하면 이 정보를 서버로 전송해 인근의 볼보 차량들에게 알려 사고예방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1월 열린 ‘CES 2016’에서는 폭스바겐은 LG와, BMW는 삼성과 제휴해 차 안에서 집안의 조명, 난방, 가전기기를 제어하고 집 안에서 차량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커넥티드 카+스마트홈’ 서비스를 선보였다.

▲ 자료: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
BMW의 경우 특수 안경과 연결한 증강현실 시스템 ‘MINI Augmented Vision’를 내놨다.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까운 주차장, 제한속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차량이 하나의 신용카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아차는 주유소와 실시간으로 통신해 차량 내에서 주유 가격 등 실시간 반영을 통한 지문인식 결제 서비스를 개발했다. 비자(VISA)는 ‘자동차 결제’ 서비스를 혼다 차량에 탑재하기 위해 개발 중이다. 자동차 하나로 주유비 계산, 주차 시간에 따른 주차 요금 계산 등 다양한 서비스 결제 방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황승호 현대차 차량지능화사업부 부사장은 "차 안에서 운전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며 "사람들은 자동차에서 라디오를 듣고, 전화를 하고, 더 나아가 업무를 보는 등 이동수단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