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용민, 유상연 기자/graphic@ |
"모든 물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예상외로 결론은 간단했다. 복잡한 용어도 없었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묻는 질문에 대한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NIPA)의 답은 간결했다. 최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윤 원장이 보는 시각은 어떻게 보면 단순할 정도였다.
윤 원장이 보는 4차 산업혁명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스팀이나 전기, 컴퓨터의 개발로 산업화가 앞당겨졌다면 앞으로는 ICT기술을 기반으로 한 융합이 이를 주도할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한국 경제나 제조업이 이같은 변화의 흐름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 "4차 산업혁명? 생명력 불어넣는 것"
윤종록 원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모든 제품을 서비스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라며 "어떤 물건이든 생명력을 집어넣으면 그 순간부터 서비스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활동 모두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즉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어떤 물건이든 할 수 있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브레인'이 필요하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선 안된다. 효율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가령 100원짜리 물건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1000원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다만 최근 클라우드 서비스 등이 확산되며 소위 '브레인'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 윤 원장의 설명이다.
윤 원장은 "브레인 안에서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능을 높여줘야 한다"며 "그래서 소프트파워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건을 잘 만드는 것은 하드웨어 파워가 필요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소프트파워의 힘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소프트파워는 어느 특정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문화나 교육, 금융 등 사회 전반이 모두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잘하지만 기술을 담보로는 못하지 않느냐"며 "그런 금융은 소프트한 금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규제 자체도 새로운 틀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윤 원장은 "제품 규격이나 용량 등을 제한하는 것이 산업사회의 규제라면 이제는 그런 부분들을 유연하게 만들어 줘야 서비스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산업사회가 지속되면서 모든 제도와 교육, 문화 등이 하드파워에 집중돼 있다"며 "앞으로는 소프트파워가 강한 사회, 학교, 가정, 개인들이 모여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게임에 제대로 중독시켜라"
윤 원장은 "패러다임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여러 영역들이 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들어 교육과 관련 "우리 아이들이 남이 만든 게임에 중독돼 있다는 걱정들을 많이 한다"며 "게임을 '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에 중독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프트파워를 키우기 위해선 소프트웨어를 알아야 하고, 초등학교부터 교육 등을 통해 이런 시도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상상력을 구현해 내는 툴(Tool)이 바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라며 "상상력을 혁신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실현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3년부터 2년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으로도 재직했던 윤 원장은 "차관 재직시절 전국 도서관 이름을 무한상상실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며 "도서관이 미래부 소관이 아니라 이뤄지지 못했지만 대신 전국에 있는 과학관에 무한상상실을 만들어 코딩이나 3D 프린팅 등을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들이 누구나 이런 부분들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관료출신으로 대학총장을 지내는 분을 만났는데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보니 필요했구나'하고 느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 "CEO, 아픈 곳을 표현해라"
윤 원장은 우리 기업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소위 세계에서 잘 나가는 기업 20개를 보면 엑슨모빌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가 무엇을 가지고 경쟁하는지를 보라"며 "바로 창의적인 상상력(Imagination)을 혁신(Innovation)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철광석이나 원유 등을 넣어 제품을 만드는 시대에서 상상력을 넣어 혁신을 만드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도 상상력이 곧 자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기존 제조업에 창의적인 상상력을 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원장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GE를 예로 들며 "GE는 단순히 항공기 엔진을 파는 회사가 아니다"라며 "엔진에 센서를 붙여 수명이 다할때까지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사례도 꺼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세계 최고의 물관리 회사가 나온 것은 연간 강수량이 400밀리미터에 불과했기 때문"이라며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상상력을 더한 결과 적은 비용으로 바닷물을 민물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내놨다"고 소개했다. 윤 원장은 "어려움을 자산으로 삼아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단순히 신발을 제조하는 사업에만 머물지 말고, 바닥에 센서를 붙여 건강을 관리해주는 제품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원장은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아픈 곳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며 "아픈 곳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산업이 ICT라는 비타민을 처방받으면 삽으로 막을 것을 호미로도 막을 수 있다"며 "아픈 것을 안고 가면 안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진행중이고,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우리 기업들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존 비즈니스모델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창조적 파괴'를 지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