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는 카메라 셔터소리는 무심코 들으면 다 똑같은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인터넷 상에는 각 제조사의 셔터음을 비교해놓은 사이트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거엔 카메라의 형태와 크기, 구조 등이 달라 셔터음이 제각각인 게 당연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0'과 '1'로 수렴되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 디지털시대에도 여전히 셔터음만큼은 제조사별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간직한 영역으로 남아있다.
인위적으로 셔터음을 심어놓은 스마트폰도 마찬가지. 몰카(몰래카메라) 방지를 위해 한국과 일본에만 셔터음이 나도록 설정돼있는데 제조사별로 그 소리가 다르다. 가령 삼성전자 갤럭시S8은 과거 'NX20' 카메라의 셔터음을 채택했다. 수많은 셔터음 중 NX20의 찰칵 소리가 사용자에게 거부감이 덜했다는 이유에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에 색깔을 입히는 시대. 그 첨병에는 디자이너들이 서있다. 과거 눈에 보이는 게 디자인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사람이 듣고(청각), 느끼는(촉각) 모든 것에 디자이너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서울 R&D 캠퍼스'는 이처럼 인간의 오감만족에 도전하는 삼성전자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가전과 모바일 등 각 사업부문에서 온 디자이너 1500여명이 이곳에서 사용자를 배려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끊임없이 연구한다. 삼성전자 디자인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19일 이곳 '사운드랩(Sound Lab)'에서 만난 남명우 책임은 "공항에 내린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켤 때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반가우면서도 뿌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전자공학과 작곡을 전공한 그에게는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호칭이 붙어있다.
스마트폰 벨소리부터 냉장고를 켜거나 끌 때 나오는 소리 등 각 제품에서 나오는 음향은 그가 근무하는 사운드랩이 숱한 시행착오 끝에 내놓은 소중한 결과물들이다. 가령 벨소리, 문자 도착음, 터치음, 온오프음까지 갤럭시 시리즈와 관련한 모든 소리가 이곳에서 만들어지거나 테스트를 거쳐 세상에 나온다.
사용자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소리만 듣고도 삼성 제품이라는 걸 은연중 알 수 있게 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녹음실, 조정실, 무향실 등을 갖춘 스튜디오를 만들어놨다. 첨단 제품을 연구하는 곳에 그랜드피아노와 드럼, 전자키보드 등 각종 악기가 놓여있는 게 색다르게 다가왔다.
삼성전자 디자인의 시작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단 두 명의 디자이너가 삼성전자 제품의 디자인을 맡았다. 그 뒤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디자인 강화에 힘이 실렸고 2005년엔 "삼성의 디자인은 아직 1.5류"라며 전사적인 분발을 촉구하는 이 회장의 '밀라노 선언' 이후 디자인 혁신에 본격적인 불이 붙었다.
가장 최근 디자인의 성공사례로는 '무풍에어컨'이 꼽힌다. 직경 1㎜ 크기의 구멍 13만5000개에서 흘러나오는 냉기가 동굴과 같은 시원함을 주도록 설계한 이 에어컨은 '무풍'이라는 이름과 달리 에어컨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1월 출시해 지금까지 55만대가 팔렸다. 연간 200만대 안팎으로 추정되는 국내 에어컨 시장에서 '빅 히트작'이다.
직사각형 형태의 바람문 대신 개기월식을 연상시키는 원형 바람문을 채택하고 본체를 3도 가량 살짝 기울여 냉기가 멀리까지 퍼지도록 고안한 것까지 디자이너들이 꼼꼼히 손을 봤다. 올해 2월엔 세계 3대 디자인 시상식으로 꼽히는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송현주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디자인은 제품의 조형미뿐 아니라 성능과 편리함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디자인, 개발, 상품기획 부서가 서로 협업하고 싸우고 고민도 하면서 결국 시장에 없는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