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선박 건조과정에서부터 향후 운영되는 선박 관리까지 ICT(정보통신)로 대표되는 4차 산업 기술과의 접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통해 선박 품질을 개선하고 발주사들의 요구에 대응, 수주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최근 시뮬레이션 검증시설인 ‘힐스(HILS) 센터’ 개소식을 가졌다. 본사 종합연구동 1층에 215㎡ 규모로 조성된 이 센터는 조선과 해양, 엔진 등 3개 분야에서 총 9종류의 힐스 장비를 갖추고 있다.
조선업계 및 관련 학회에선 힐스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과 셔틀탱커, 드릴십 등 고부가 선박과 해양플랜트 시장이 확대면서 자동화에 대한 선주들의 요구가 다양해졌고, 해양플랜트 공사에 적용되는 통합시스템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의 오류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를 해상 시운전으로 대체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통합시스템의 고장과 오작동을 테스트하기 위한 검증체계가 필요한 상태다. 이 중 힐스(하드웨어 오류 점검)는 다양한 가상 환경에서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 오류나 오작동 등을 미리 진단하고 검증할 수 있는 기술이다.
현재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도 시뮬레이션이나 시운전 등을 통한 품질 검증 단계를 거친다. 현대중공업은 이를 전문으로 하는 힐스 센터를 확보했다는 것이 이들과의 차이점이다. 이 센터는 글로벌 조선사 중 최대규모이기도 하다.
특히 해상에서 작업하는 드릴십 등 특수선박 위치를 제어하는 다이나믹 포지셔닝(DP) 힐스는 9가지 가상 환경에서 144개의 기능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 실제 선박이 해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해서 검증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ICT 기술 접목에도 적극적이다. 이미 2011년 세계 최초로 ICT 기술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선박의 효율적 운항을 돕는 시스템인 ‘스마트십’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ICT 기술을 활용해 경제적이고 안정적으로 선박 운항 및 관리를 돕는 ‘통합스마트선박솔루션’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시스템은 항해사 숙련도와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항해 방법을 표준화하고, 운항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 및 분석해 운항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였다.
개발 타이밍도 맞아떨어졌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19년부터 선박운항 관리체계를 디지털화 하는 ‘이내비게이션(e-Navigation)'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향후 스마트 선박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통합스마트선박솔루션을 탑재하는 선박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로이드 선급 선박해양부문 루이스 베니토 이사는 “통합스마트선박솔루션은 스마트 시대 해운이 가야할 방향과 부합되는 핵심 기술”이라며 “앞으로 5년 간 발주가 예상되는 6500여척의 선박(클락슨 기준) 중 현대중공업그룹 시장 점유율을 고려할 때 약 700척의 선박에 이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앞서 올 4월에는 스마트십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해운사인 사우디 바흐리와 스마트십 부문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한 MOU를 맺기도 했다. 향후 바흐리와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엔진과 발전기 등 선박 기관 상태의 원격 모니터링 및 제어와 정비시점을 먼저 알려주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바흐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37척의 VLCC를 보유하고 있다. 2015년 현대삼호중공업에 발주한 VLCC 10척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34척의 선박 건조를 현대중공업그룹에 맡겼다. 이번 MOU로 현대중공업은 ICT 기술 개발 뿐 아니라 바흐리와의 파트너십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현대중공업은 앞으로도 ICT 기술을 수주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계산이다. 이를 위해 국내 조선업계에선 처음으로 ICT기획팀을 신설, 최고 디지털 책임자(CDO)를 영입하는 등 조선과 ICT 기술의 융합을 지속적으로 시도할 계획이다.
김태환 현대중공업 CDO(전무)는 "지금도 선박 경제운항 솔루션과 제품 수명주기 관리 솔루션 등 각종 시스템을 개발해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며 "선박이나 엔진 등 제품 뿐 아니라 다양한 솔루션을 판매하는 것이 미래에는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